좁은 문, 좁은 길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구원에 대한 말씀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흔히 말하는 거듭남, 중생,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구속사역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내 것으로 취하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거듭남, 중생, 칭의...
이런 모든 단어들은 “좁은 문”을 일컫습니다.
“좁은 길”은 좁은 문(거듭남, 중생, 칭의)으로 들어온 자들이 마땅히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가 있는 협착한 길을 말합니다.
이 협착한 길은 회개와 거룩함을 말합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마땅히 짊어지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자들 즉 삶에 성령의 열매가 없고 삶에 회개와 거룩함이 없는 자들은 분명히 거듭남을 받았어도 진짜로 버림받고 찍히고 꺽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좁은 문
하나님의 찢기심과 피 흘리심이 바로 나의 죄악과 허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강력한 말씀의 빛이 나의 양심을 찌릅니다. 계시의 영역을 열어주셔서 내가 바로 죄악 덩어리임을 보게 하십니다. 이 말씀의 빛 앞에 정녕 돌이켜 회개하게 됩니다.
거듭남은 기적입니다. 거듭남은 전 인격적인 삶의 변화를 동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공로없이, 행위 없이, 선물로 구원의 은총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거듭남이 바로 중생, 칭의, 새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좁은 문에 들어온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닙니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온 자들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천국)을 향해 협착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Keypoint는 진짜로 거듭남을 받은 자가 자신의 의지로 신중하고 의식적으로 좁은 길이 아닌 타락된 멸망의 길로 갔을 때입니다.
좁은 길
좁은 문(거듭남, 중생, 칭의, 새 생명)으로 들어간 자들은 예루살렘 성(천국)을 향해 협착하고 좁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좁은 길은 영의 성장입니다. 좁은 길은 영혼의 깨어남입니다. 좁은 길은 성화입니다. 좁은 길은 성결입니다. 좁은 길은 순종입니다. 좁은 길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좁은 길은 회개와 거룩한 삶입니다. 좁은 길은 자기 부인입니다. 좁은 길은 자아 파쇄입니다. 좁은 길은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가는 협착한 길입니다.
그 좁은 길은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작동시켜 말씀에 복종케 해야 하는 길입니다. 즉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회개와 거룩함으로 삶을 단장해야 하는 길입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다 연약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허나 다시 일어나서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허나 좁은 길을 걸어가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신중하고 의식적으로 돌이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각 사람의 자유의지는 하나님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 좁은 길을 포기하거나 넓은 길로 돌이키면 버림받습니다. 심판받습니다. 지옥갑니다.
그래서 한번 거듭남으로 찬란한 영광의 천국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 좁은 길은 거듭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을 받은 자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잘못된 가르침
현대 교회들이 말하는 “구원”이라는 단어는 좁은 문과 좁은 길을 동시에 아우르는 교리입니다. 좁은 문(거듭남, 중생, 죄사함, 칭의, 새생명)과 좁은 길(회개, 거룩함, 성화, 영의 성장, 영혼의 깨어남)을 구분치 않고 포괄해서 구원이라고 일컫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한번 거듭남으로 천국의 영광은 결코 단번에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좁고 협착한 길을 반드시 걸어가야 천국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대한 명확한 선을 그어야합니다. 좁은문을 좁은 길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또한 좁은 길을 좁은 문으로 오해해서도 더더욱 안됩니다.
거듭남을 받은 후,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 길은 날마다 자기 부인이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현재진행형과 미래완료형임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은 그들의 삶과 사역에 권능과 은사로 역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며 아주 적은 숫자의 믿는 자들이 이런 죄를 지을 수 있는 요건에 해당됩니다.
즉 충분한 영적 성장을 경험하여 더 이상 말씀의 젖만 먹는 영적 갓난아기가 아닌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자 즉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들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신중하고 의식적으로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정중히 거절한다면 죽음에 이르는 죄에 해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사실은 말씀의 젖만 먹는 영적인 갓난아기(진짜 거듭난 자)들도 자신의 의지로 신중하고 의식적으로 좁은 길(회개와 거룩함)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자산의 자유의지로 언제든지 넓은 길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의지로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영광의 영역인 천국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번의 거듭남으로 영원한 천국이 보장된다는 현대교회의 구원 교리는 다른 복음, 다른 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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