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적 구원론이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이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을 받은 천국백성이기 때문에,
죄 많은 이 세상에 조금 더 사는 것보다
천국에 빨리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소망이다.
그래서 그 천국에 가는 여정이 아무리 좁고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천국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중한 우리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 만일에 천국에 못가면 중간층도 없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에
천국이 우리의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는 구원의 길을 바르게 가르쳐 주는 일이
무엇보다 더 시급하고 귀중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때여서인지
양(兩)극단적인 구원론들이
성도들의 천국 소망에 많은 혼란을 주어
공포감을 주거나 안일함에 빠지게 하고 있다.
먼저 공포감과 위압감을 주는 말들이 있다.
우선 나의 칼럼은 어느 특정인과 집단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주님의 이름으로 밝혀두는 바로서,
아래 글은 어느 카페에서 발췌한 글이다.
천국갈 목사 없다! 큰일이다!
덕ㅇ사ㅇ교회 천국 간증을 통해
주기철 목사님이 천국에서 하시는 말씀은
실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주기철 목사님 이후로 천국에 들어온 목사님이 몇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어야 할지, 한쪽 귀로 듣고한쪽 귀로 흘려버려야 할지 고민이다.
이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큰 일이다.
천국에 가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목사님들이 다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 동안 천국 지옥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지옥에 갔는지 누가 천국 갔는지 몰랐다.
그저 천국 갔으려니 막연한 생각만 해왔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의 문을 열고 보니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다 판이한 상황이다.
한경직 목사, 강원용 목사, 옥한흠 목사, 하용조 목사.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목사들이 하나같이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일제시대 순교한 목사들 가운데 몇 명은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는 것을 목격했기에
그들은 확실히 천국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신사참배한 목사들,
추도예배, 장례예배 주도한 목사들
회개치 않음으로 다 지옥에 가 있다.
문제는 지금도
추도예배, 장례예배를 하지 않는 교회가 없고
하지 않는 목사가 없다는 것이다.
다 지옥으로 떨어질 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우상숭배하고 있으니
주기철 목사 이후로 천국 들어간 목사가
거의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한국에 수십만도 넘는 목사들이 있다.
그 중에 과연 우상숭배하지 않는 목사는 몇 명이나 될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목회자는 몇명이나 될까?
실로 의심스럽다.
목사들 가운데 피를 토하는 '회개'를 외치며
자신도 회개에 목숨을 거는 목사가 얼마나 있는가?
'추도예배' 안하는 목사는 몇명이나 될 것이며,
장례식 예배' 안하는 목사가 있을까? 거의 없다!
다 장례식 예배만큼은 주도한다.
그러니 지금 한국에 천국갈 목사가 없다.
그 가운데 당신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 주님 눈에 피눈물 내게 하는 자들이 목사들이다.
목사들이 사단의 밥이 되어 있다.
주여!
한국 땅에 있는 수많은 목사들,
다 지옥 떨어지게 생겼습니다.
정녕 이들이 회개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겁니까?
정말 한국교회 이대로 망하는 겁니까?
주님께서 그냥 두고 보지 마시고
뭐라도 어떻게 좀 해 주시옵소서!
천국갈 목사들이 없습니다.
다 하나같이 죄로 치우쳐 있고,
하나님께는 등을 돌렸나이다.
한국 교회 목사님들 살려 주시옵소서!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주기철 목사님 이후로 천국에 들어온 목사가 몇 안된다고?
일제 식민지 치하인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제 27차 조선 기독교 장로회 전국총회가 열려서 신사참배 가결을 선포했다.
그때 그 신사참배를 반대한 목사,장로,성도들 2,000여명이 투옥되고
그 중에서 50여명의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다.
그 순교자의 반열에 주기철 목사님도 있는데
주기철 목사님이 천국에 간지가 70년이 다 되었는데,
그 70년여년 간에 천국에 들어온 목사가 몇명이 안된다는 말이
과연 옳은 말이며, 과연 믿어야 할 말인가?
현재 우리나라 목사들만 해도 어림잡아 300,000명이 넘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엄청난 숫자인데
주기철 목사님 이후로 천국에 들어온 목사가 몇 안된다?
물론 숫자가 많으니까
구원받는 목사도 많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나타나고 증명이 안되는 일이라고
너무 쉽게 함부로 말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이런 글을 보고, 이런 말을 들은 성도들이
놀라서 부들 부들 두려움에 떨고 있다.
목사님, 목사님들 중에 구원받은 목사님들이 이렇게 적다는데
우리 같은 성도들이 가히 구원에 이르겠습니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목사들의 구원 얻은 숫자가 적다는 말에
평신도들의 믿음이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이다.
숫자에 겁먹을 것이 없지만
겁을 먹게 되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이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故박용규 목사가 본 천국 지옥도 가짜요,
또 신성종 목사가 본 지옥과 천국도 가짜라고 하며,
박용규 목사는 지금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가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
나중에 밝히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고
또 위에 언급한 한국에 유명 목사님들이 지옥에 있다는 말도
맞을 수도 있지만 전혀 허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에 수 많은 목사들이 지옥을 가게되는 이유가
회개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날마다 목구멍에서 피를 토할만큼
회개를 외쳐서 깨어서 회개해야 한다는 말에도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고 동의한다.
내가 한국교회 목사들이 회개해야 하는 일에 동의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한국교회 목사들이
세상의 안일함과 그 세상죄에 깊이 빠져있어서
지금 회개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수의 목사들이 지옥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는 늘 기도 때마다 회개하며 말씀데로 바로 살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많은 목자들을 지옥 자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져 공포를 조성하는 일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장례식 예배와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을
모두 일괄적으로 우상숭배로 몰아서 한국에 장례식 안하는 목사들이 없으니
다 우상숭배자이므로 다 지옥 간다?
물론 우상숭배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어디 모든 장례식, 추모예배가 다 일괄적으로 우상숭배인가?
나는 추모예배는 장려하지 않으나
필요에 따라서 천국에 간 고인을 기리는 기념예배를
살아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필요할 때가 있다고 본다.
나는 금년 추석에도 부모님의 묘를 돌아보며
형제 자매들을 앞에두고 부활설교를 할적에
주님 오실 때에 이 무덤이 갈라지며 잠을 자던 부모님들이
일어날 것이니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천국의 소망을 두자고
무덤을 보며 시청각 설교를 한 바 있는데
그럼 이것도 우상을 숭배하는 일인가?
장례예배도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가족을 위로하면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굴복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장례예배의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내 생명이 내것인즐로 착각하며 살다가
다른 이의 죽음을 보고 숙연해지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장례예배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경배를 드리면서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라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아멘"
이렇게 드리는 장례예배가 어찌 지옥에 갈
우상숭배의 죄가 된다는 말이 되겠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장례예배는 위 말씀처럼 남아있는 가족과 기타 유족을
하나님 앞에서 천국의 소망으로 위로하는 위로의 예배이다.
성경에 야곱과 요셉의 장례가 나오고 있고,
또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인 순교자들인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장례예배도 우상숭배였다는 것인가?
물론 죽은 이의 명복을 빈다든가
죽은 이를 향한 숭배를 한다면 이는 명백한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천주교 신부라면 몰라도
어떤 목사도 죽은 이를 향하여 숭배하는
장례예배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휴거의 문제도 그렇다.
성경상으로 보나 현재의 정황상으로 보나
휴거를 믿는다고 아무나 다 휴거되는 것은 아니지만
천 분의 일이니, 만분의 일이니 하면서
휴거가 너무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말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미리 겁먹고 낙심하게 하고
위압감을 느껴서 포기하게 하는 일들은
실족하게 하는 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영혼구원이나 휴거를 물론하고
사람으로서는 다 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가 있으니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거 아닌가!
구약성경에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에게 쫒기다가 한 말이 무엇인가?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제단들을 헐어버렸는데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라고 했다.
그때에 대답하신 말이 무엇인가?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두었으니....
그런즉 이와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위의 말씀이 우리에게 힘과 소망을 주는 은혜의 말씀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라고 하셨으니
구원은 우리가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사역이시다.
지금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이다.
♪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
그렇다, 믿으면 된다.
그 믿음 속에는 기도와 회개와 순종이 들어있다.
이 믿음이 있으면 된다.
휴거를 포함한 구원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다 타락하고 다 우상을 숭배하여 지옥가게 생겨서
어디 몇 사람이나 구원에 이르고 휴거하게 되겠는가 싶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남겨놓으신 칠천명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그 말을 듣고
"아이고, 목사님 겨우 칠천명이요?" 라고 한다.
그것은 숫자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구원하실 사람들의 모두를 포함한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구원과 휴거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
내가 힘쓰고 노력해서 다 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를 믿고 기도하며
의지하므로 도우심을 받는 것이다.
주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주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따르므로 그를 기쁘시게 해야 된다.
그리고 살려고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으로
휴거의 꿈을 꾸는 것은 그야말로 꿈이다.
성경에 죽을려는 자는 산다고 했으니
주를 위해 죽을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 믿음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이 믿음을 어디가서 얻는가?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이 믿음의 보고(寶庫)이므로
성경의 설교를 듣고 청종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다음은 안일함에 빠지게하는 말들이 있다.
소위 칼빈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한번 구원을 받으면 어떤 경우에도
천국에 가지 못할 염려는 없다고 말을 한다.
물론 한번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미쁘시기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인이 자기의 아이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나는 이 말씀을 목숨 걸고 믿는다.
그런데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주님과 우리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는 것이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정결하게 몸과 마음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만일에 한쪽이 부정한 행동으로 몸을 더럽히면
신랑과 신부의 관게는 깨지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구원받고 주님의 신부가 된 후에도
세상을 동경하고 세상을 짝한다면
혼인 관게는 파탄이 나고 만다.
디모데후서 2:12 하반절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디모데후서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니라"
주님은 먼저 우리를 배반하거나
부인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러움에 빠져서 회개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으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얼마나 주를 부인하며 살았는가!
여기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대형 카페의 카페지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니
우리를 어떤 경우에도 버리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질문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자식이 잘못했다고 죽이는가? 라고...
그러니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말이다.
이것이 한국교회 성도들을 안일하게 하고 병들게 한다.
성경에서 가장 외치고 강조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이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는줄 알면서도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는 줄은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사람이다.
신랑은 거룩하지만
신부가 날마다 옛 남자를 못잊어서
뒤를 돌아본다면 혼인관계가 파탄이 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고,
거룩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신다고 했다.
주님이 우리를 부인하신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앞에서 중보자가 되시고 변호자가 되시는
주님이 변호해 주시는 은혜이다.
"아버지여, 저가 나를 믿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죽었나이다"
이렇게 주님의 변호하시는 덕분으로
자녀가 되고 심판을 면했는데
만일 그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상관이 없다고 하나님 앞에서 부인 하신다면
우리는 어느 한 곳도 기댈 곳이 없게 된다.
나는 아주 가까운 사람의 일로
감옥에 갇힌 자를 위하여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받는데 변호사 말고는 기댈 곳이 없음을 경험하여 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인생의 피고인이다.
그런 주님과의 신랑 신부의 관계가 파탄이 난다면 우리는 끝장이다.
그런데 거룩하지 못하면서
한번 받은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우길 것인가?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렇다!
거룩함이 없거나 거룩함이 깨져버린 사람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뵐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지금 그런 실정이다.
죄에 대한 회개는 한 마디도 외치지 않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원칙론만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잠들어 있는 한국교회 모습이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안일함에 빠지게 하여 잠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후로 이 두 가지 양(兩) 극단적인 구원론을
깊이 삼가해야 할 것이다.
- 마지막 부흥 진형곤 목사
출처 : 마지막 부흥 / 마지막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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