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시대에 있어서
가장 으뜸으로 사악한 오류는 바로 "영적교만"이다.
교만이 무서운 것은
어떤 다른 타락보다도 구별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영적인 질병이 먼저 치료되기 전에는
다른 어떠한 영적인 질병도 치료될 수가 없다.
교만보다 더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고
찾아내기 힘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영적 교만의 본질은 바로
자기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그러한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다 악한 것으로 배재해 버리는 것이다.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떠한 가르침도 필요치 않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그는 충고들에 대해
항상 우습게 생각한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아서
충고를 겸손하게 받아드린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평가하는데 매우 주의깊으며
자신이 얼마나 빗나가기 쉬운 존재인가를
충분하게 생각한다.
만일 자신이 빗나간 길을 걷고있다고 생각되면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조사하며 중구할 것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은
타인들을 바라보면서 가장 거친 말로 그것을 표현한다.
종종 그들의 비난은 악한 자들 뿐 아니라
자신보다 월등한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에게도 향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비꼬아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겸손한 자들은
항상 자신의 죄악됨과 비천함에 압도되어 있다.
겸손한 자들은 자신안의 죄를 바라보며 그것을 걱정한다.
그러므로 남의 마음에 대해 왈가왈부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우며
자신의 영적인 냉담함을 탓하고
남들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감사하는 줄로 여긴다.
또한 자신의 동료 크리스챤들에 대한 그들의 호소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담고 있으며,
타인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한량없는 상냥함과 겸손으로 대한다.
영적인 교만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외면적으로 다르게 행동하게 하며,
다른 방식으로 말하게 하고
표정과 행동 속에 나타난다.
그러나 겸손한 크리스챤은
자신의 세상적인 의무를 충실히 다하지만
그는 홀로 천국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다.
또한 그는 단지 구별을 위한 구별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결코 자신을 의도적으로 구별되게 보이도록,
그렇게 나타나도록 따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의 나중이 되려고 하며,
양보하고 따르고 순종하고자 하며
죄를 제외한 모든 일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한다.
하지만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은
늘 주목받는 존재가 되고자 노력한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존경을 받고자
자긍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은
남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존경을 표할 때,
그것을 당연히 여기며 마음껏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실 그들은 그러한 처사를 기대하고 있으며
만일 자신에게 마땅히 할 바를
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악한 감정을 잦는다.
- 죠나단 에드워즈 '영적교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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