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없이 행복한 가정없다
가정은 사람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현장이다.
벌거벗은 몸을 보이기도 하고,
텔레비전 축구 중계를 보면서
마음껏 말을 해댈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은 나의 가장 많은 단점을 알고 있고,
나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었을 때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또 내가 심통이 나면 어떻게 화풀이를 하는지 등등….
용서와 격려만이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죄가 생생하게 나타날 수 있는 곳이다.
영적인 싸움도 가장 먼저 생겨나는 곳이 가정이다.
가족 간의 비난이 치명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진정한 용서와 격려가 없이는,
서로 추한 모습을 보면서 그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이 없이는 지켜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대신할 만큼
큰 사랑을 주신 것이 아닐까.
교회 안에서도 상담을 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이나 가정 문제로 찾아온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 교회 안에서 신앙적으로,
생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의 배경에는 언제나
원만치 않은 가정이 있다.
모든 사회 문제의 근원은 바로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 파괴는 곧 사회 파괴이자,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파괴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정 파괴 현장 소식을 듣는다.
매스컴은 이혼과 별거와 독신이 정상이고
당연한 듯 드라마와 뉴스로 쏟아낸다.
사단은 가정을 공략하여 하나님 나라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사실 교회에서 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사역은 가정에서 이미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가정을 세우십시오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은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왜냐하면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 눅 10:27)는
큰 계명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웃에 해당되는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배우자와 자녀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을
항상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 참되기 위해서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비로소 봉사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배우자를 사랑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영이 사도 바울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비늘이 벗겨질 때에만 비로소 이러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자아의 껍질이 깨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좋은 사역자를 원하시기 전에
좋은 사람, 그리고 가정을 이루는 평범한(?) 사람을 원하신다
이러한 평범한 가정은 부부가 언약에 헌신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기 전에 가정을 세우셨고,
주님의 교회는 그러한 언약의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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