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건강 |
의사들의 비밀, 수술 환자가 죽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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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0 11:09수정 : 2012.06.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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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의 세계를 환자가 짐작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수술방에 들어가는 환자들은 마취 상태다. 깨어 있더라도 의료의 전문적인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진은 의료사고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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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실적 경쟁에 내몰린 ‘공장식 대형 병원’서 일하는 전공의 5명의 방담
“밤새는 새벽시간에 의료사고 몰려”“사고 나도 대부분은 우리끼리 무마”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의의 말이다. 환자 안전사고는 그만큼 예민한 문제다. 병원 수술장에서, 입원실에서 몸뚱어리를 맡긴 환자들은 의료진의 손끝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크고 작은 실수로 세상을 떠나는 환자는 한 해 1만7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58~59쪽 기사 참고). 하루에 50여 명꼴이다. 유족들은 아마도 운명과 병을 탓했을 터다. 죽음에 이르는 진짜 이유는 침묵 속에 묻히기 일쑤였다. 일반인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하는 병원의 모퉁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흔히 레지던트로 알려진 전공의 5명을 어렵게 한자리에 모았다. 모두 내로라 하는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처지였다. 가명 속에 이들을 숨긴 채 말을 들어봤다. _편집자
이승훈: 전공의들의 피로가 문제다. 피곤하면 수술 부위를 봉합할 때 바늘도 한 번 덜 꿰매게 된다. 약을 처방하는 과정에서도 사고가 있다. 환자가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되는 약들이 있다. 그런 걸 처방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경고 표시가 뜬다. 그런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그걸 못 보는 경우도 있다. 그걸 환자가 먹게 된다.
권재우: 택시 운전기사도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라고 하면 사고가 날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내과는 특성상 시술을 많이 한다. 척수 쪽으로 약제를 투입하기도 하고, 폐에 물이 차면 바늘이나 기구를 써서 뽑아낸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밤에 하는 경우가 많다. 레지던트들이 낮에는 일이 많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6시부터 일하면 지쳐서 대충 하게 된다. 그러면 사고가 난다.
“피곤한 전공의 대처 늦어 환자 사망”
노인환: 외과에서는 다음날 암 수술을 하게 되면 오늘 미리 주요 혈관에 링거를 꽂아야 한다. 사실은 수술 날 아침에 마취과 의사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당일 수술을 빨리 돌리려고 전공의들에게 전날 미리 하도록 한다. 하룻저녁에 7명 정도에게 링거를 꽂는다. 그런데 피곤하니까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오의석: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가 코 수술과 편도선 쪽 수술을 한꺼번에 받았다. 수술 당일 밤에 출혈이 생겼다. 병원에서 전공의에게 콜을 했는데, 전공의가 피곤해서 자느라 못 받았다. 대처가 늦어져서 환자가 사망했다.
서정일: 진단이나 처방을 하는 일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밤새우고 잠을 못 자면 술 취한 상태와 비슷하게 된다. 의료진의 성의나 도덕성 문제로 돌릴 일이 아니다.
노: 정규 시간에는 약사가 항암제를 섞는 일을 하는데 휴일이나 밤 시간에는 인턴이나 간호사가 그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걸러줄 사람이 없다. 병원에서 그걸 우리에게 맡기니까, 인턴과 간호사가 서로 안 하려고 자주 싸운다. 그래서 인턴이 이긴 과는 간호사가 항암제를 섞고, 그렇지 않은 과는 인턴이 섞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항암제 조제 과정에서 에러가 많이 벌어진다. 그런데도 병원은 비용을 아낀다고 약사를 추가로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권: 피곤해서 약을 엉뚱한 환자에게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환자가 혈압이 낮다고 하면 “타이레놀(진통해열제) 주세요”라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간호사는 아마 ‘얘가 미쳤나’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서 다시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런데 간호사도 신참이면 그게 그냥 들어가버린다.
이: 간호사의 근속 연수가 짧아지고 있다. 병원에서 근무 연수가 길면 권고사직을 하는 식으로 내보낸다. 비용이 많이 드니까. 그러다 보니 간호사의 숙련도가 떨어진다. 처방을 잘못해도 걸러주지 못한다.
권: 간호사들과 농담 비슷하게 말한다. 전공의랑 간호사 중 누가 더 힘드냐고. 물론 전공의가 더 힘들다. 그렇지만 전공의들은 4년만 버티면 된다. 간호사들은 10년차도 3교대로 일한다. 밤새워 일하고 생활이 불규칙하니까 힘들다. 그러니 나간다. 새로 온 간호사들은 당연히 실력이 떨어진다. 한번은 수액을 하루에 1ℓ 놓으라고 했는데, 1시간에 다 줘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노: 그렇게 사고가 나도 대다수는 전공의나 간호사들끼리 무마한다. 교수님이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다.
권: 작은 의료사고는 넘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커지면 넘어갈 수가 없다. 보호자가 알게 되면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환자가 전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노: 병원 내부의 실적 경쟁 때문에 생기는 사고도 있다. 병원에서 교수님들에게 실적 경쟁을 붙이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는 환자가 수술받은 과에서 하기도 하고, 항암치료를 주로 하는 혈액종양내과에서 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실적을 올리려고 환자를 놓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혈액종양내과로 넘길 환자를 이제는 붙잡고 치료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 과 전공의들은 항암제 쓰는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다. 교수님은 “혈액종양내과 전공의한테 물어봐서 배워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항암제 사고가 발생한다. 다른 과에서도 무리하게 환자를 잡고 항암치료를 하다가 적정 용량의 10배를 투약하기도 했다. 그러면 환자 몸에 타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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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2일 서울 강남의 한 세미나 카페에서 전공의 5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좌담에 참여한 전공는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전공의 5명 가운데 2명은 사진 촬영이 끝난 늦은 밤에야 좌담에 합류했다.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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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한명이 동시에 4명 수술하기도”
권: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 중에도 상태가 좋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있다. 상태가 좋은 환자는 우리 과에서 계속 항암치료를 한다. 그렇지 않은 환자는 내과에 넘긴다. 쉽고 돈 되는 환자만 받는 거다.
이: 교수님 한 명이 과의 세를 불리려고 한다. 수술을 하는 과가 아닌데도 “수술도 우리가 한다”고 하며 환자를 다른 과에 의뢰하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권: 병원의 수술장도 폐쇄된 공간이다. 의료사고가 나기 쉬운 곳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많을 것이다.
오: 교수님 한 명이 동시에 2~3개 수술장을 열기도 한다. 교수는 방을 돌며 핵심적인 부분만 맡는다. 그러다 한 방에서 수술이 길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방 스태프들이 대기하기도 하지만, 그냥 다른 전공의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수술 후 출혈’ 같은 문제가 생긴다.
이: 우리 병원도 공장처럼 돌아간다. 한 교수님이 수술방을 4곳까지 연다. 보통은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 교수님이 흔히 “그냥 네가 해라”고 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전공의가 다른 선배 전공의에게 전화로 설명을 들으며 시술하기도 한다. 환자는 특진비를 냈고, 교수한테 수술을 받는다고 믿는다. 병원이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환자에게 위해가 갈 수도 있다.
권: 게다가 마취는 짧을수록 좋다. 그런데 교수가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으면 마취가 길어진다. 병원은 수익을 위해 수술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려야 한다.
이: 교수님들도 불쌍하다. 병원의 ‘직원’이다. 일과가 끝나면 휴대전화로 실적이 찍힌다. 매출을 올리라는 압박에 계속 쫓긴다. 의대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들도 가르쳐야 하고, 연구 실적도 내놓아야 한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한다. 특히 진료와 연구 실적을 올리라고 강하게 압박을 받는다. 그런데 교육을 잘하라고는 아무도 압박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오래된 교재를 그냥 사용한다. 좋은 의사가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권: 교수님들도 힘들다. 3시간에 100명의 외래환자를 본다.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서: 대형 병원에 오면 치료를 잘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몰려드는 환자들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환자들한테 아예 교수님을 만날 때 질문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제대로 된 진료가 될 수 없다. 병원에서는 어떻게든 환자를 많이 유치하려 한다. 기계들도 열심히 돌린다. 자기공명영상(MRI)은 새벽까지 돌아간다.
권: 새벽 3시까지 암환자를 불러내 방사선치료를 한다. 밤새워서 의료진이 일을 하는 것이니 위험할 수 있다.
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내가 맡은 환자가 빨리 수술받게 해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새벽에라도 검사를 받는 게 낫다. 그렇게 입원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전공의는 병원에 값싼 인력일 뿐”
권: 환자들은 교수님이 자기 몸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그 많은 환자를 어떻게 다 아나. 게다가 입원 환자들의 회전이 빨라졌다. 전공의가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전공의들은 너무 피곤하다.
노: 전공의 2년차다. 우리 과에 전공의 1년차가 없어서 일이 많다. 한 달에 25일을 당직 근무한다. 쉬는 날이 5일이다. 한 주에 일하는 시간이 120시간이 넘는다. 월요일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그 다음날 아침까지 일한다. 그렇게 밤을 새우는 날이 일주일에 두 번이다. 환자들의 회전이 빨라서 더 힘들다. 일주일이면 환자가 다 바뀐다. 일이 쌓인다.
권: 1년차 때는 일주일에 120시간 정도 일했다. 하루치 일이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혼난다. 지금은 그나마 4년차라서 80~90시간 정도다.
서: 가정의학과는 그나마 낫다. 레지던트 1년차일 때 일주일에 90시간 정도 일했다. 지금은 70시간 정도 일한다.
노: 내가 맡는 환자가 50명 정도다. 그러면 환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침대 위치를 보고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사고가 잦은 시간이 새벽 3~4시와 오전 11~12시다.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때다.
오: 원래는 환자를 직접 보고 처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이 많으니 그냥 사진부터 찍으라고 한다. 피로 때문이다, 환자를 제대로 보지 않으니 사고로 이어진다.
권: 사람이 없으니 전공의 한 명이 휴가를 가면 나머지 전공의의 부담이 커진다. 그러니 휴가 때 사고가 많다. 다른 동료의 환자들까지 챙겨야 한다. 아무래도 내 환자만큼 잘 챙기진 못한다. 우리가 성격이 더러워서 여자 동료가 임신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일이 밀리니 그렇다.
오: 그나마 우리 병원에서는 출산휴가도 두 달밖에 안 준다.
이: 간호사는 휴가를 내면 ‘헬퍼’라고 해서 대체인력을 쓰기도 한다. 전공의는 휴가를 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근로기준법을 찾아봤다. 법에 따르면 근로자는 일주일 40시간 노동이 원칙이다. 의사는 노사 대표의 서면 합의 아래 52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다. 우리는 그 2배 이상을 일한다. 병원이 법을 어기고 있다.
서: 전공의는 근로자라는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1991년 대법원은 전공의가 사용자인 병원 쪽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도 없다.
이: 병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전공의가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을 제대로 받으려면 병원이 임상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전공의는 병원 처지에서는 쉽게 쓸 수 있는 ‘저렴한 인력’일 뿐이다.
서: 전공의들의 부담을 덜어야 의료사고도 줄고 교육의 질도 향상된다. 그래야 미래 의료사고의 가능성도 줄게 된다.
이: 일본은 주당 80시간 초과근무가 인정되면 과로사로 인정받는다. 2004년 가정의학과 1년차 전공의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우리도 죽으면 과로사로 인정받는 거다. (낮은 웃음)
권: 병원은 우리를 쥐어짜서 수익을 내고 있다. 병원도 다른 병원과의 경쟁에 쫓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병원이 돈을 쓸까”
이: 오래전부터 수혈과 관련해 사고가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수혈을 할 때 몇 번의 확인 과정이 자리를 잡았다. 의료사고와 관련해 환자단체연합회에서는 항암제를 처방하는 과정에서라도 확인 과정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돈이 필요하다. 병원이 돈을 쓸까. 지금으로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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