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3일 목요일

당신은 남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남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게 된 근원에는 선악과가 있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 스스로 판단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구의 핵심에 바로 선악과가 있었다.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자 하는 교만이 선악과의 정신이다.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내 주변을 보기보다
나의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의 긍휼 어린 눈으로
형제 자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 이것이 판단이다.

우리는 판단이 아니라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판단은 내 의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지만,
분별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분별이라는 명목하에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하나님의 눈으로 분별을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분별이 아닌 판단과 정죄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의해,
자신의 합당케 여기고 있는 논리에 의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르다고,
자신이 옳게 여기는 기준과 다르다고 
비난하고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분별이 아닌, 판단과 정죄일 뿐이다..

올바른 영적 분별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을 깨닫고
스스로의 생각과 기준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그분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 하는 자들이 가질 수 있다. 

아버지가 집나간 탕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분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별하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있다.

판단하는 사람은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할 뿐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별하는 사람은
그 사안이나 사람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눈물로 중보하게 된다.

자신이 판단과 분별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판단하는 대상을 위해 주님 앞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중보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된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비난과 고소가 아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의 말이다.

우리가 말로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한다면
그 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교만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오래 참으셨다.
나의 나 되기까지 오래 참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오래 참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판단하는 대상의 현재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과거와 미래를 같이 보신다.

나는 그의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알지 못한다.
또 나의 미래의 모습도 알지 못한다.
변화되지 못했던 나의 예전 모습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비록 모자라 보여도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내다보며
기대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의 지혜이다.


- 이용규 선교사, 더 내려놓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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