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분별해 보세요...이 목사님의 설교가 성경적인지..

[스크랩]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

산과 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세 단계로 발전한다.
먼저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즉 자연현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첫 번째 단계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된다.
만물의 근본이 하나이므로 산과 물의 구별이 사라진다.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 천지(天地), 미추(美醜), 주야(晝夜), 희비(喜悲)가 모두 분리되지 않는 하나다.
 이를테면 기존 가치체계에 일대 전도현상이 일어나는 두 번째 단계다.
그다음은 산이 도로 산이 되고 물도 다시 물이 되는, 전도되었던 가치체계가 제자리를 찾는 마지막 단계다.
 이것은 첫 번째 단계로의 회귀가 아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산과 물이 단순한 감각적 인식 대상이라면, 마지막 단계의 산과 물은 불성(佛性)을 반영하는 도구다.
이 단계에서 불자(佛子)는 산과 물 속에서, 다시 말해 천지사방에서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듣게 된다.
 그래서 야보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반문했고,
성철 스님은 그 구절을 인용하여 법당 안에서만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신 것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일체만물의 근본이 무엇임을 보고 알았다는 뜻이다.
견성에는 법열(法悅), 곧 깨달음으로 인한 기쁨이 수반된다.
주머니가 비어도 즐겁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는 기쁨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때를 가장 위험한 시기로 여긴다.
그 시기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모든 가치체계에 일대 전도현상이 일어난 두 번째 단계인 탓이다.
 겨우 입문했을 뿐인데도 스스로 완성된 존재라 착각하고, 누가 더 큰 도를 깨쳤는지 경쟁하고,
부처님의 자비를 말하면서도 누구보다 독선적일 때가 바로 이 시기다.
그래서 견성은 오도(悟道)의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오도는 다시 산은 산이 되고 물은 물이 되는 단계, 즉 전도되었던 가치체계가 제자리를 찾는 마지막 단계다.
 언제나 천지사방에 충만한 불성을 힘입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단계로서,
이때는 남정네가 장작 패고 아낙네가 물 긷는 것도 구도의 행위다.
그때부터 불자는 참된 의미의 불자가 된다. 결국 성철 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고 하신 것은,
참된 불자됨의 여부는 법당을 떠나 자기 삶의 현장에서 판가름난다는 의미였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관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세 단계로 발전한다.
 신앙을 갖기 전에는, 자기 삶은 단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자기 직업과 소유는 모두 자기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를테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첫 번째 단계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인격적으로 만나면(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령 세례라 한다), 자신의 삶은 더 이상 예전의 삶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여태껏 살아온 삶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신학교를 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때가 바로 이 시기다.
또 우주만물이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자신만을 가장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서 자신만 가장 의롭다고 착각하는 때도 이 시기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 시기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모든 가치체계가 전도된 두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겨우 입문을 뜻하는 견성의 단계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반드시 오도의 경지인 성령 충만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 밖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삶은 다시 삶이 된다.
산과 물이 다시 산과 물이 되는 마지막 단계다.
 그렇다고 첫 번째 단계로의 환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삶이 자기 유익과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삶이라면,
마지막 단계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삶이다.
이때부터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직업이든 다 성직이 된다.
삶과 직업의 주체가 자기 자신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제사장이라고 했다.
 요즈음 말로 성직자란 뜻이다.
목회자만 성직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성직자다.
그가 행하는 일과 직업이 무엇이든 그 목적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미화원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정화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었다면,
 그의 직업은 절대적 의미를 지닌 성직이요 그는 성직자다.
 목회자가 목회자만 성직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목회자의 오만이요,
 교인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직자로 살아야 할 교인의 직무유기다. 

모든 불자들이 법당 밖 일상의 삶 속에서 불법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당 밖에서 자신의 삶과 직업을 성직으로 수행한다면,
이 세상은 종교인들로 인해 더없이 맑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불당과 예배당에서만 부처님과 하나님을 찾는다면,
이 세상은 종교인이 많아질수록 더욱 어지러워질 뿐이다.
 그것은 가장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이기 쉬운, 모든 가치체계가 전도된
두 번째 단계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과 물은 산과 물이 아닌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산은 언제나 산이고, 물은 항상 물이다.



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그림=김회룡 기자 기고자 : 이재철


출처 :천안도자기핸드페인팅 {해바라기공방} 원문보기   글쓴이 :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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