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마지막 때, 거룩함이 없는 구원은 …


  


마지막 때, 거룩함이 없는 구원은 …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거룩한 구원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도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적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없을 것이다"(히 12:14).

이것은 구원의 말씀 중 핵심이 되는 말씀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이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말세에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는 물로써 죄많은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불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벧후 3:6~7).

그렇다면 왜 그토록 인자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을 완전히 심판하러 다시 오시는가?

이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이다(창 6:5).

노아 홍수 심판 때에 전 인류 중애서 몇 명이 구원받았는가?
의인인 노아 식구 여덟 명만 남고 나머지는 다 심판을 받아 죽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당시에 인구가 수억에서 수십억 정도 되었을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연대와 그 당시 엄청나게 길었던
인간의 수명을 잘 계산해 보면 그렇다.)

그중에 겨우 여덟명만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온 인류 중 극소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몇 명이 구원을 받았는가?
의로운 롯(벧후 2:8)과 두 딸 외에는 모두 심판을 받아 죽었다.

롯이 소돔 고모라를 나올 때
사위 두 명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자
그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9:14).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에 미련을 갖고 뒤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큰 성 전체에서
단 세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불 심판 때는 얼마나 구원받겠는가?

인자의 때, 즉 주님의 재림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음을 기억하라(눅 17:26~30).

이상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본격적 심판 때는
소수의 의인들 외에는 거의 전부가 심판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 때는 언제나 극소수 중
극소수만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것이 성경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다.
주전 587년 구약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공의를 구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그곳에 제사장도 많았고 선지자도 많았으며
각양 종교적 활동은 많았지만,
강퍅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아무도 안 들었다.

의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멸망했다.

하나님께서 전멸시키는 심판이 다가올 때는
그 땅에 의인이 없어지고,
모두가 타락한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창 15:12-16; 18:20--33).

그러므로 말세는 고통하는 때인 것이다(딤후 3:1).

혹자는 마지막 심판을 앞둔 때가
그렇게 의인이 없는 타락한 시대라면,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현대는 종말이 아니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하는 올바른 믿음의 가르침과 
지금까지의 수많은 신앙 위인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 시대의 교인들을 한번 점검해 보라.

현재 기독교인의 영적 상태라면
구원받을 자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여, 저들의 닫힌 눈을 열어 이 사실을 분명히 보게 하소서!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장년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뿐이었다.

나머지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었다.
(이것이 바로 12 정탐꾼 사건이다.
민수기 13~14장을 보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극소수만이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안일한 인간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엄중함을 알 수 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당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1~12).

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근신하고 진지해야 한다.

이 시대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하러 오실 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표정에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의 비장함이 없다.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그대가 진지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진지함은 기독교의 높은 수준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생명이며 정수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사와
연극 속에 나오는 검객이 다르듯이,
진지한 그리스도인과 위선자는 다르다."

이 시대의 풍조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진지함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가?
당신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할 정도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당신은 구원하시는 성령의 조명을 받았는가?
당신은 참으로 성령으로 새롭게 출생했는가?
당신은 날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사는가?(롬 8:13)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서 정절을 지키면서
흠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계 14:4)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근신하고 깨어 있는가?(벧전 5:8~9)

자기 영혼의 문제에, 영생의 문제에 진지하지 않은 사람은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진지한 자들은
이 글을 읽게 된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
이 글을 읽는 모든 주님의 택자들에게 성령의 조명을 주시고,
성령의 불세례를 주셔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구원을 속히 얻게 하옵소서!


<거룩한 구원> 노병기 저, 예영커뮤니케이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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