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shall even be as when an hungry man dreameth, and, behold, he eateth; but he awaketh, and his soul is empty: or as when a thirsty man dreameth, and, behold, he drinketh; but he awaketh, and, behold, he is faint, and his soul hath appetite: so shall the multitude of all the nations be, that fight against mount Zion. Isaiah 29-8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꿈과 환상으로 예수를 만나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중,
이방인의 수가 차는 것이고, 예수님은 3년 반의 활동후에 반드시 다시 오시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중보기도이며,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신부의 자세로 매일을
열심을 내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람을 붙여주실것이고 우리는 그때 그때
복음을 전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에게 삶에 모범을 보여야 할것입니다.
주님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성도가 매일 매일을 회개하며 말씀으로 살아
갈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 입니다. 주님을 기다립시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매일매일 우리를 위해 피눈물로 기도하시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분, 단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며 삽시다.
구원 받음에 믿음이 있으신 분들, 구원을 끝까지 붙잡으세요. 주님의 피조물이나 주님을 떠난
악한 영들이 굶주린 사자와 같이 삼키려 달려 듭니다.
때가 가까움니다....
[스크랩] 마음이 흘러가는데로 사는 사람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종종 필요에 따라
마음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필요가 강할수록
더욱 강렬한 마음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흐르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흐르는 것을 보면
난 그를 사랑하는 것이 맞아'
이렇게 굳게 믿어 의심치 않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의 흐름이 멈추어 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 내 사랑이 변했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이 사랑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혹 유익에 따라
마음이 흐르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간절한 필요의 마음과 사랑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만약 내 아내가 밥도 챙겨주지 않고
늘 아프기만 하며
부부관계조차 할 수 없다면
나는 그럼에도 내 마음이
아내를 향하여 흘러갈 수 있을까요?
만약 내 남편이 돈도 벌지 않고
불치의 병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으며
부부관계조차 할 수 없다면
나는 그럼에도 내 마음이
남편을 향하여 흘러갈 수 있을까요?
만약 내 교회 성도가 헌금도 않하고
어떠한 봉사도 할 수 없으며
주일날 점심만 축내고 있다면
목회자로서 나는 그럼에도 그 성도를 향하여
부자 성도만큼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을까요?
가끔씩 필요에 의한 흐르는 마음이
내 안에서 발견되어지면 또한 나를 향하여
필요에 의한 흐르는 마음을 느끼게 되면
참으로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필요에 의하여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흐르는 것은 아닙니까?
간절한 필요 때문에
간절하게 주님을 찾으면서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더듬어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주님을 필요로 하는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장 12절~14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 어떤 유익이나 필요를 드릴 수 없는
마른 막대기요, 죄악덩어리이며
늘 세상을 향하여 간음하는 자인
우리를 향하여 마음을 쏟으셨으며
물과 피를 한방울도 남기지 아니하시고 퍼올리셨습니다.
그렇게 본을 보이시며 요구하십니다.
너희도 그런 사랑을 하여라...
네 몸과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라...
네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하여라...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필요에 따라 마음이 흐릅니다.
예수님께 조차도 필요에 의해 마음이 흘러갑니다.
우리의 악함은 도대체 어디까지 입니까?
피흘림의 사랑을 완벽하게 덧입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기적이며,
우리는 여전히 계산적이며,
우리는 여전히 차가운 심장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요한 일서 4장 7절~21절)
주님 우리의 사랑없음을 용서하소서...
우리는 늘 필요에 따라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허용했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어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사랑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사랑이
시베리아의 찬 바람을 잔뜩 머금은
우리의 심장을 소성시켜 주시기 원합니다.
말씀의 밀알이 우리의 심장에서
싹이 트고 잎이 펴 열매맺을 수 있도록
우리의 심장을 녹여주시옵소서!
아버지의 한없는 긍휼을 원하나이다...
출처 : 주님 다시 오십니다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스크랩]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
자기발견과 성결 -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
우리는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본심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을 의식하여 본의아니게 거짓된 언행을 해보기도 하고, 자신을 속여보기도 했을 경험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교회에서 오랬동안 충성 봉사하며 신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를 떠납니다. 연락도 끊기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도통 알지 못할 정도로 잠적해 버리는 것이지요. 이것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었거나 잊을만하면 주위에서 보여지는 광경이기도 할 것입니다.
잠잠히 열심내어 충성 봉사하는 듯 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버럭 혈기를 내고 소리를 치기도 합니다. 순하고 순한 목사님인줄 알았는데, 사모님인줄 알았는데 성도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나 언성을 높이며 심히도 혈기를 내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열심내어 다니는 성도님이 어느날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게임에 빠져 기도시간을 빼먹고 오히려 교회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구여.
여기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은 이젠 그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교회의 눈치로 인하여 본연의 내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놓은채,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는 분에 넘치는 몫을 감당하다가 실족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목사님이 시키니까, 성도들이 보고 있으니까, 안하면 분위기 깨질 것 같아서, 아버지가 장로인데 행여나 누가 될까봐,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긋나면 안되기에, 남들 다 하는데 나 혼자만 안하면 왠지 믿음 없는 사람 같고, 소외감도 느껴지기에...
자 이제, 우리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왜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을 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믿음인양 착각하면서 충만함도 은혜도 받지 못한채 꾸역꾸역 어떤 신앙의 행함을 계속 유지하려 하는지 자신의 내면을 잘 점검해보고 버릴 것은 버리고 성령으로 채워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을 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점검해보아야 할 4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어떤 선교회 임원은 상대를 마음에서 미워하면서도 그 미운 마음은 철저히 감춘채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모임에도 잘 참석해주지 않으면서, 힘들때 잘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툭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내밀며 선교회나 임원들에게 불만과 지적의 소리를 하니 겉으로는 받아주면서도 속으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요.
또한, 자기의 위치는 그만큼 남에게 보여지는 위치요, 신앙의 연륜도 있는지라 자신의 불편한 속내가 드러나는 것은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요, 그러한 악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선교회 임원들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서의 일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속내도 그러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영혼에게조차 먼저 인사를 한다는 것에 무척이나 사랑이 많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는 아주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그러나 이내 목사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본연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목사님 앞에서는 혈기를 안내면서도 목사님 안계시면 이런저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주위와 화평을 깨는 것입니다.
상대가 넘어지고 안되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저 사람은 죄 때문에, 악해서, 저 꼴 날 줄 알았어" 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샘통이다"라고 내심 마음이 즐거워지는것이지요. 그러나 그 앞에서는 안됐다고 하면서 위로하는 척 하기도 합니다.
남자들과 함께 있는 곳에서는 곧잘 짜증을 잘 내고 이래저래 언행이 거칠게 나오면서도 여자가 있으면 음식이 아무리 늦게 나와도 그 잘 내던 짜증 한번 안내는 것입니다.
오히려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에 "더 맛있게 나오려는 거겠지?" 아주 긍정적인 멘트까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자와 있을때와 여자와 있을 때의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다른 이의 행동이 다 가식적이고 자신과 남을 속이는 행위라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속으로는 아무리 화가 나고 미움이 있어도 상대에게 무례히 말하거나 함부로 자기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상처를 주는 것은 심히도 삼가 경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직도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교회의 일을 감당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직도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꾹꾹 눌러놓은 채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신의 내면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주님께 토로하셔야 합니다. 많은 일꾼들이 겉과 속이 다르게 충성 봉사하면서 불평과 원망을 쌓아두고 살아갑니다. 앙금과 미움을 쌓아두고 일합니다.
그러다 어느덧 못참으면 자신은 할 도리는 다했고 참을만큼 다 참았다 하여 분을 내거나 교회를 휙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은 살펴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육의 충성으로 자신의 신앙이 좋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됩니다.
둘째,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즉흥적으로 기분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은 재밌고 분위기도 좋았을지는 몰라도 정작 다음날 되면 자신은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시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 하였는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즉흥적인 말, 기분적인 말, 헛된 농담하는 말은 우리가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버리려고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의 모임안에서 그다지 할말이 없으면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가십거리를 만들고자 일부러 사실을 과장하여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할말이 없을 때는 조용히 있는 것도 배워나가는 훈련이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말한 것을 얼마나 지키는지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제 자신도 어느 때는 기분적인 말을 했다가 지키지 못하여 당황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해 가셔야 할 것입니다.
셋째,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행함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의 진짜 모습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는 혼자 있을 때입니다. 교회안에서는 성경보고 예배드리고 기도한다 하면서도 교회 밖에 나가면 교회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있지요.
자신보다 더 배우고 가진 자들 앞에서는 겸손하면서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는 쉽게 지적이 나오고 정의로운 메세지로 포장되어 업신여기는 언행이 나오기도 하구여.
남이 연단 받을때 자신이 해주는 말과 정작 자신이 연단받을 때의 모습은 어떠한지도 점검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낮에나 혹은 일터 끝나고 방안에 혼자 있을 때 정작 자신은 무엇을 보고 들으며 가까이 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갈때는 애써 신호등을 잘 지키면서도 혼자서 운전하고 갈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으면 휙! 하니 신호를 위반하고 떠나는 모습도 발견해 보셔야 합니다.
실화인데, 어느 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그 날은 기도하기 싫고 이젠 그만 집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고 싶은데 아무래도 성도들보다는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체면이 있는지라, 성도들이 어여 나가기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성도들의 기도소리도 희미해지더니 잠잠해졌습니다. 목사님은 이젠 되었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순간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나자, 얼릉 자리에 앉아 "주여" 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 착한 콤플렉스를 버리셔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소위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모든 이들을 만족시켜 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이들로부터 만족을 받으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괴롭게 할 뿐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대인관계를 실험한 결과, 10명이 있으면 그중에 2~3명은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상대와 대화 한마디도 안해보고서 그냥 느낌상, 그냥 이유없이 마음이 그러하게 그 상대가 싫고, 그 상대가 아무리 잘 해주어도 여전히 싫은 마음은 싫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건전하게 무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상대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일이지만,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 모든 이로부터 만족을 받으려 하는 강박관념은 빨리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주위에게 너무 잘 보이려고 한 나머지, 자신에게 오는 비난과 비판의 소리에 너무 연연하여 괴로운 반응을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착한 콤플렉스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좀 어거지 말이 될 수도 있으나, 주님안에서 건전히 무시하는 마음을 터득하시라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 말을 오해하여 자기 편에서 몇번 친절히 대해보고 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나랑은 안맞어 이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진리로 분별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은 하나님앞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자신이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을 하는 데에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4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했습니다.
첫째,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은 있지 않나.
둘째,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셋째, 때와, 장소, 대상에 따라 나의 언행이 어떠한가.
네째, 착한 콤플렉스 즉,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 하고
모든 이로부터 만족을 받으려는 강박관념이 있지는 않는가.
이 외에도 남에게 보이는 신앙을 하는데에는 여러 이유들과 환경들이 있겠으나,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는 측면으로서는 위 4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나날이 성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여전히 한가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곧 성결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결은 곧 성령충만입니다. 이 차이를 우리가 잘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할례하지않고 여전히 육의 충성에만 머물러 있으면 신앙성장에 발목이 잡힙니다. 나를 발견하고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뼈아픈 일입니다. 차라리 새벽기도 40일 작정을 하고 말지 할 정도로 자아가 죽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일이요 성결이 될수록 성령님이 더 많이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고 주님의 일을 이루어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기도 많이 한 자가 큰 자도 아니요, 전도 많이 한 자도 큰 자가 아니요, 봉사 많이 한 자도 큰 자가 아니요, 바로 죄없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니 육의 충성과 더불어 영의 충성, 즉 마음의 할례에도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늦추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천국중개사
김온유 전도사의 구원 강해...제일 정확한듯 해요~
■“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믿고 고백만하면 천국을 간다”
■“한번 회개하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 ”
■“자백만 하면 된다 ”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
이상은 교회 안에 잘못 심어진 교리와 누룩들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과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고 진정한 진리를 일깨우며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흐름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주님께 감사히 영광 돌립니다.
|
제가 다른 교회 성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
“그러면 그 이유를 성경적으로 말씀해 주실수있습니까?”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 를 지워 버리리라
(시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믿음이 성경의 뿌리를 두지 못하고 전통적이고 교리적인 계명에 근거를 두고 있음에도 교회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진리인마냥 속는 신도들도 많습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신자에게 이 구절이 말씀하신바를 해석해 달라면 해주지못하고 심지어 목사님도
마찬가지인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지고 지워질수있다는 말씀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가운데 구원론이 회복되어야 하며 진정한 주님의 뜻이 드러나야 하겠기에 이 글을 써봅니다
제가 쓴 글을 읽기전에...
먼저 목사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유명한 로이드존즈(마틴 로이드존스(Martyn Lloyd-Jones))의 유명한 글을 읽어보라 이글이 틀리면 로이드존즈도 이단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반드시 정독하셔야 합니다.
현대 교회에 깊게 퍼진 이단, 샌디메니안 주의(그릇된 믿음관)
“18세기 말경에 스코틀랜드에 존 글라스(John Glas)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영국인 사위를 두었는데 그의 이름은 샌디멘(Sandyman)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같이, 매우 인기가 있고 많은 영향을 끼친 가르침을 창시하였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기독교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는 로마서 10:9의 말씀을 인용해 이것만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말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그분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 역시 그렇게 말씀합니다.
감정은 쓸모없고 그 메시지만 믿고 그 진술을 표현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18세기에 매우 인기가 있었고 큰 해를 끼쳤던 샌디메니안주의입니다.
그 당시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굉장한 손해를 끼쳤습니다. 한 운동으로서는 사라졌지만 그 가르침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가르침은 인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집회에서 진리가 전해진 후 설교자를 통해 "이 진리를 믿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믿는다고 간단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라고 당신이 말하면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의 감정에 대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의 회심에 대한 가르침의 중점은 지성적인 믿음에 있습니다. 그것에다 영적인 훈련과 성경에서 발견된 도덕적인 가르침을 더하면 당신은 선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으며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셨으므로, 그분을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체험이 없어도 당신이 믿는다고 말하면 구원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가르침은 모든 확신에 관한 교리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은 확고한 확신을 가졌다는 사람들에 관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들은 "물론입니다. 당신 역시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면, 그들은 "이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리 오십시오" 하며 성경을 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이것을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이 당신에게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라고 반문하면 그들은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이것은 구원의 확신에 관하여 매우 흔한 가르침입니다.
단순히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감정을 고려하는 것조차도 단념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며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며 신약성경과 성경 전체에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잇는 것을 발견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두려움의 의식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서 발견된 이 위대한 느낌,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임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꼈던 이 의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현대 복음주의와 18세기 중반까지의 복음주의의 큰 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신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점들이 있었음에도 이 점이 바로 현시대와
종교 개혁, 청교도 그리고 초창기 감리교 때와의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경건한 의식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습니까? 경이와 놀람,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에 대한 느낌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람들이 모세나 다윗 또는 다른 사람들이 소유했던 이 놀라운 경험들을 찾지 않는 이유는 이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차갑고 이성적인 믿음주의(believism)을 가르치지 않고 전인격이 관련되는 경험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또한 가르칩니다. 성경은 이 경험을 어떤 한 시대나 일정한 종류의 사람들 또는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신앙은 완전히 확신하며 설복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은 확실한 것입니다.
신앙은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서 어두움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이 아닙니다.
참 신앙은 ‘완전히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이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주는 성경의 몇몇 진술들을 제시하여야 겠습니다.
중략...
여러분들은 소위 샌디메니안 주의라는 이단이 18세기에 교회를 괴롭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샌디메니안 주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는 주님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
고 떠들어 대는 교훈입니다.
그 교훈은 모든 감정과 확신을 배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이고 이단입니다.
참으로 믿고 중생한 사람이라면
확실히 자기는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을 믿는다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앙은 아닙니다.
믿음은 확신이라는 또 다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앎입니다. (관계성)
우리는 지식의 요소를 믿음으로부터 박탈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설복되어)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각을 함유하고 있으며
그것은 가슴속에서 전인적으로 일어납니다.
그(아브라함)는 완전히 확신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참되고 본질적인 신앙의 요소입니다.
*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중에서 발췌
두 번째 글은 서울의 그 유명한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님이 추천서를 써주신 그책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아느냐”를 쓰신 김경규목사님의 인터뷰내용입니다.
입력 : 2010.11.08 05:55
김경규 목사 “‘개독교’ 비난, 잘못된 ‘구원론’ 때문”
▲김경규 목사.
기하성 총회 목회신학대학원 교수(조직신학)로 재직 중인 김경규 목사(51)가 신간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라이프비전)를 출간했다.
미국 LA Cohen신학대학원(M.Div), 탈봇 신학대학원(MA), Biola 대학(Ph.D), 풀러선교대학원(MA) 등에서 조직신학, 성경해석학, 선교학, 리더십을 전공한 김 목사는 구원론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제공하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오늘날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전투구의 싸움터로 비춰지고 있다”면서 “그 이유는 구원의 확신만 있으면 어떻게 살아도 천국 갈 수 있다는 잘못된 구원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수 믿는 자는 죄를 회개한 자인데, 삶을 들여다보면 정작 회개의 열매는 전혀 없다. 열매가 없음에도 열매를 맺으려 하지 않고 ‘자신은 구원받았다’며 자만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김 목사는 “세상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그대로, 죄와 단절하지도 않고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은 무늬만 크리스천인 경우가 많다”면서 “열매 없는 무늬만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넘쳐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구원 얻는 참된 믿음과 구원론에 대한 오해가 바로 잡히지 않는 한 교회는 더욱 어두워져갈 뿐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김 목사의 주장이다.
김 목사는 자신이 집필한 저서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를 통해 잘못된 구원론과 그릇된 믿음으로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혼을 회개시켜 천국가게 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 목사가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잘못된 구원론은 다음과 같다.
◆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기만 하면 열매 맺지 못해도 결국은 천국에 간다.
◆ 구원의 확신만 있으면 불순종하고 살아도 죄와 상관없이 결국은 구원 받는다.
◆ 거룩함이 없어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과 기도 많이 하면 천국 간다.
◆ 순간적으로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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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구원은 어느 한 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끝나는 날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계속적으로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며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읽어보시고 무슨생각이 드십니까?
이책은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강력추천서를 써주신 책인데 만약 이런 이야기가 이단이면 명성교회도 이단이어야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그것이 한국교회의 전통과 교리와 명성과 기득권에 집착한 한국교단과 교리의 실정과 현실임을 깨닫는 자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목회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거짓말해서는 안되고
성경을 철저히 연구해서 구원론을 회복하고 바로 명시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거짓말은 주님오실날이 가까이오는 이 마지막시대가운데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것입니다.교회안에 심판이 먼저있다는 성경말씀 믿으십니까?
저도 성경을 250독을 하면서 정말 한국의 정통교리와 성경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구나
너무나 깊은 회의와 고민 끝에 이제는 확실하게 주장 할 수있습니다.
이제 제가 성경적으로 구원론을 볼까 합니다
주목해 주시기 바라고 반드시 정독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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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구절을 보라
사도바울은 신약성경의 반 이상을 쓴 저자임을 기억하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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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구원을 받고 주님의 말씀으로 전도한 사도바울은 도대체 왜 버림받기를 두려워했을까? 또 사도바울의 고백을 고전후에서 살펴보라.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 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헬라어: 아도키모스- 버 려진 불량주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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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씀들이 이해가 되는가? 이말은 고린도 교회에 사도바울이 쓴편지로 믿는자에게 쓴 서신서다(성경은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자에게 선포되어지는 말씀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미 회개를 했고 구원을 얻은 사도바울은 무엇을 두려워했고, 조심했는가?
◆왜 믿음을 살펴봐야 하며
◆왜 믿음을 지켜야 하며
◆왜 믿음을 시험해야 하는가?
◆한번주님을 영접했고 회개했는데 무엇이 도데체 문제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믿음의 지체들이 많다 .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 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원어의의미는 구원과 직결됨)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딤후 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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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믿음을 지킬 필요가 무엇인가? 왜 굳게 해야 하는가? (후에 설명하겠다 그이유는 우리를 죽이고 속이고 멸망시키려는 마귀가 우리의 틈을 공격하며 우리를 믿음에서 무너뜨리기 위해서 늘 세상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신앙은 전쟁이라고 하는것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기를 우리의 믿음은 이미 보혈로 깨끗이 씻김 받았는데 왜 이런 고백을 하는것인가? 우리는 의인인데 믿음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지체들이 많다는 것이다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 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 로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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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분명 믿는자였는데 믿음에 관해서 파선했다고 한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그런데 데마는 처음에 바울의 동역자였는데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 자였다.
(몬 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몬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 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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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계속 우리에게 믿음에 관해 다른 해석들을 준다
우리가 아는 한번 믿으면 영원한 구원인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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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불신자에게 하는 말씀이아니라 믿는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교회에게 쓰는 편지임을 기억하라) 이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천국)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 도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 4: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 치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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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다
천국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미치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 믿음 하지만 정작 믿음의 본질에 대해 잘 모르고 회개도 잘모른다
단순히 내가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즉 예수믿음을 우리는 가져야 하는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라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 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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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했고, 귀신도 좇아냈고, 권능도 행했다면 적어도 평신도는 아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주님이 도무지 알지 못하다는 말을 하신다. 우리의 믿음을 다시한번 살펴봐야하는 것이고, 그 믿음이 결국 주님 앞에 섰을때(그때에) 끝까지 지킴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는것이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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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주여주여 한다고 믿는다고 고백했다고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다음구절을 보자 이 구절은 예수님의 설교인 산상수훈의 결론부분이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 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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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믿음이란 것은 단순히 사변적이고 개념적이고 교리적인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우리삶가운데 열매를 보이고 하나님의 뜻안에서 행하는 자 즉 순종하는 자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믿음을 파헤쳐보자
다음구절을 한번 볼까?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 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 게 보 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 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 느니라
(약 2: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 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약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 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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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열매로 증거되어질 수 있다. 즉 우리의 행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주님앞에 보일수 있다.
당신의 믿음은 단순히 주여주여 하는 단순히 신앙고백하는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인가?
매일 주님앞에 믿음을 보이며 점검하며 시험하며 믿음을 지키고 있는가?(고후13:5)
위의 말은 성경에 나온말들을 다시 필자가 말하는 것이다.
구원은 잃어버릴수가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필요에 의해 구분하자면 세 가지로 구분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죄에서 구원을 받았다.(과거)
성경에서는 우리가 질병과 환경등에서 구원을 얻으며 이루며 살기를 원하고
영혼의 구원함을 이루기 위해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혼의 구원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성경구절을 보면 이해가 될것이다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천국)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 도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헬라어 원어:미래시제)을 받음이라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 하시리니(미래시제)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믿는자들에게)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 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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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전통적으로 따지자면 구원 받은 사람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가? 당신은 의문도 품지 않은채 맹목적으로 성경을 읽었다
(유 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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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믿음의 도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피로 의인되고 이미 승리하였는데 믿음의 도를 위해 싸우라는 필요를 왜느꼈을까? 이미 영혼구원 즉 천국에 가는 구원을 받았다면 왜그럴까? 우리의 구원은 결정되었는데 왜 그런가? 당신은 성령의 계시와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유 1:5)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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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사상은 구원론을 예표한다
나중에 출애굽사상을 따로 공부하라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사상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출애굽사상을 당신이 잘 이해 한다면
애굽은 세상을 말하고 “애굽에서 구원했다는 말은 우리를 예수의 보혈로 죄로부터 구원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후에 믿지 않는자들 즉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믿음을 지키지 못했던 그자들이 다 멸망당했다
이해가 되는가
이말씀을 자세히 풀이한것이 히브리서 말씀이다 다음구절들을 보자
(히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 이 너희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 3: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구원을 얻 은 나와 여러분)가 아니냐
(히 3: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 3: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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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해가 되는가?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죄의 유혹으로 마음이 강팍해짐을 통해서 떨어진자 영혼의 구원까지 이르지 못하는 즉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이것은 여러분의 상황과도 같은 것 이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 동일하시다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 한 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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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서 여러분이 교리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구원론에 의문이 생길것이고 그이유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만지고 계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초림때 오실 때 대다수의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열심은 있지만 지식을 좇지않아서 정치적인 영과 결탁함으로 통해 그둘의 종교적인 영으로 예수님을 못박아 죽였듯이 주님이 오실 이 마지막세대가운데 재림의 세대가운데 그런일은 반복될것이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는 믿음에 대해 반드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구원론을 가진자들이 성경을 극단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구원론은 성경전체를 놓고 균형점을 맞추어야 한다
로마서를 읽고 야고보서가 서로 구원론이 틀리다고 생각을 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론은 하나요 저자들의 문맥상황과 강조점에서 나오는 것들이 틀릴뿐
분명히 명백히 보여지는 구원론이 존재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만이 주님의 비밀의 계시를 여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라 왜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수들이, 이시대 목사님들이 말씀을보아도 깨닫지 못하지 아는가? 주님의 말씀안에 비밀이있다
그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모세의 위치에 앉은 오늘날 목사요 신학교수들을 말한다 그증거로 다음구절을 보라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 는도다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 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 이 되게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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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는가? 그러면 그들이 말씀을 깨달을수없었던 이유들을 잘묵상해보라
즉 구원론을 깨닫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 29: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 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사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 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사 29:11)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 에게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 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사 29:12)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 하기를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사 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 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 29: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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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사야의 예언을 신약시대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다시 말씀하신다
(마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 13: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 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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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열어지기 위해서는 겸손함과 성령의계시와 조명이 있어야만 한다 다음구절을 보자
이것이 진정한 구원론을 아는 역사이다 우리안에 있는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교리의 틀을 깨고 과감하게 성경만을 바라보자, 주님의 지혜가운데 통찰력이 들어갈 것이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 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 심을 감사하나이다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성 령)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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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구절을 한번 보자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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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밑줄친 부분을 읽어보라
에베소교회에 오늘날 주님이 보내신 편지이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 자신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모습들이다.
위 편지를 보면 칭찬과 권면과 책망과 결과라는 구조로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칭찬을 보면 대단한 교회인과 대단한 성도이고 이정도면 천국가기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거의대부분 생각할 수있다 그러나....
근데 이 교인들이 첫사랑을 잃어버리고(책망)하나님은 첫 행위를 찾으라(명령과 권면)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는 교회인데 주님의 임재를 옮기겠다(심판)라는 아주 저주의 말씀을 부으신다
여러분들도 반드시 계시로2장부터 3장까지 읽어서 성령시대에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반드시 듣고 깨달아야 할것이다
다른 교회 7개교회 대부분 회개하라 말씀하신다 아니 회개했는데 또 무슨 회개를 하라고 생각할 수 있을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자백하라 말씀하시지 않고 회개하라 말씀하신다
에베소 교인들은 처음 예수 믿을때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을 잃어버림 즉 지는 자가 되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일곱교회(2장-3장)가운데 편지한 내용은 충격그 자체이다 나의 구원론을 명확히 한 말씀들이다 이교회에게 편지했다는 사실은 믿는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이다
간단히 권면하시고 명령하시는 부분만 요약해 보았다
(계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 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 2:22) 볼지어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 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 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계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 가 알지 못하리라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 를 토하여 내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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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절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지속적인 회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한번회개하면 다시는 회개 할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 구절을 정직하게 읽어보라. 우리는 지속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왜냐면 예수님의 보혈로 의인이라 부르는 자녀된 권세를 얻었지만 우리의 영이 거듭난것이지 육과 혼은 거듭나지 않았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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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때문에 마귀는 육과 혼을 통해 즉 연약한 육신과 우리의 생각을 통해 가라지를 집어넣고, 옛 죄가 옛 저주가 다시우리를 주장하게 만들며 다시 죄의 종노릇하게 우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는가?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 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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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죄가 우리를 주장할수 없는 이유가 주님의 은혜아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믿은 후에도 짓고 사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죄를 심어주고 우리를 죽이고 멸망하기 위해 계속 우리마음속에 생각 속에 견고한 진을 만들고 가라지 심어서 우리안의 말씀들을 빼앗아 간다.(마13장 마음밭 비유를 생각해보라)
그래서 성경에는 믿음을 지키고 점검하고 시험하고 굳게하고 싸우고 이런 말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하며,,,,등등 다시 앞의 글 들을 찬찬히 읽어보라,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처럼 우리를 향해 변함없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유의지가 있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의지이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갔지 않는가!
히브리서를 쓴 상황가운데 얼마나 많은 배교자가 발생했는가!
(신 30: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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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구절을 보자, 다음은 믿다가 타락한 자들이다. 이런자들은 양심에 화인맞은자들은 절대 회개의 영이 부어지지 않아 지옥을 간다
(히 6: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 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이들은 믿는자들이었다)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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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들을 통해 얼마나 우리가 구원의 교리는 알지 성경적으로 철저히 주님의 뜻을 몰랐다는 사실을 이런 성경구절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회개하여 다시는 그죄를 짓지 않고 죄를 미워하고 혐오함을 통해 말씀으로 돌아간다는메타노이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회개이다
회개의 심령은 거룩의 문을 열고 주님의 심장을 이식받는 너무중요한 은혜의 통로이다
죄를 짓되 반복적, 의도적, 습관적으로 죄가 장성하여 죄의 종노릇한다면 보혈의 구속의 효력을 값싼 보혈로 만들며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 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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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사망하며 구원을 잃어버릴수가 있다. 우리가 앞의 장에서 다설명하지 않았는가! 왜냐면 양심또한 점점 화인맞는 양심으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
리는 깨끗한 양심을 통해 주님을 섬겨야 한다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 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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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이 잘못되면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킬수 있고
절대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다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는 반드시 빌립보서 말씀처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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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냐면 믿음은 그 열매가 행함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소리이다
믿음을 증거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의 삶 우리의 말(믿음의 언어)과 믿음의 행동 믿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함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면 믿음은 반드시 보여져야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 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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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도 단계가 있다
단순히 고백하는 신앙은 이제 막 아기로 탄생하는 믿음이다
그러나 아기는 젖을 물지 않으면 굶어죽게 된다.
젖은 주님의 말씀이고 말씀으로 계속 자라나서 장성한 분량으로 커가야 한다
(히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 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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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로 깨끗함받는 의인이 되었고 천국에 갈수있다면
죄를 좀 지어도 갈수있는 천국이라면
한쪽발을 세상에 담그고 한쪽발은 교회에 담그며 사는 그냥 교인이라도 다천국에 간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잘못계시 받는것이다
주님의 보혈이 그렇게 값싼 것인가? 그보혈의 의미를 알고 있나?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지신 십자가를 지니신 목적을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있는가? 각자 성경을 찾아보라
거듭남은 이제 믿음의 문을 여는 시작단계일 뿐이다
신앙은 마귀와의 전쟁이다, 선택의 전쟁이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그보혈과 말씀으로 이기는 삶을 사는 전쟁이라는 소리다
분명히 구원에 이른 길은 좁은 길이고 좁은 문이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눅 13: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 되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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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는 수는 적을 것이다
성경66권을 보라,
성경적으로 생각하라
노아의 방주때도 8명뿐이라 말씀하신다 겨우 라는 말을 성경에서는 덧붙인다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 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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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뿐 아니라 가나안땅(천국을 예표)에 들어간자가 겨우 여호수아와 갈렙 두사람이었고,(고전10:1-6 이구절이 바로 출애굽사상이다) 다 광야에서 멸망당했다.
(고전 10: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 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가나안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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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심판때도 구원받은 자가 세사람이고, 전체적인 구원의 비율이 성경을 보면 참 낮을뿐아니라 예수님 역시도 남은 자에 대해 말하며, 소수의 사람들을 말씀하시며 적다고 분명히 못을 박아 말씀하셨다. 이것은 정확한 수가 아니라 전체비율적인 말씀이지만 인정하자, 성경이면,,,
다음 구절을 한번 보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 노니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 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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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절은 너무나 중요한 구절이다
주님이 주신 안약을 눈에 넣어라 다시 이 구절을 보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의 보혈로 의인되었다는 우리를 가르킨다
(갈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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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입장에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보다 중요한 것이 구원의 목적대로 사는것(회개에 합당한 열매맺는것)을 더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기 원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가운데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낼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것이 보이는가!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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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은 성령의 열매 - 사랑의 열매
과실은 빛의 열매 -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과실은 팔복의 열매
우리는 이 열매를 맺으며 철저히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신앙, 철저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신앙으로
믿음을 이루어 가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계명에 순종하는 믿음이다
(요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 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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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 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열매맺지 않는 자의 삶)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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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두렵고 떨림이 생긴다
왜냐하면 읽으면 읽을수록 구원론이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구절들이 이해가 될것이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 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죄로부터의 계속적인 회개 >>이것이 우리의 거룩함으로 나아감)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 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 땅하뇨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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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은 단순히 죄를 입밖으로 토설하는 것이지만 회개는 근본적으로 나의 삶을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으로 보시므로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기쁘시게 여기고, 죄로인해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오며 회개하여 주님의 거룩하심과 완전하심을 닮아가는 자에게 계속적인 은혜가 부어진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동기와 뜻과 양심을 감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두기도문을 한번보자 (세리,바리새인)
(눅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 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 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 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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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스스로 구원의 안정감속에서 기만하며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말씀을 들을때마다(신앙생활) 양심이 찔려감을 통해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 로되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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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죄들을 계속 떠올리며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과 무지를 바라보고 온전한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가~! 하나님이 이처럼 죄를 싫어하신다는 사실과 이 죄 아니 내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에 인해 통회하고 통분하며 회개의 심령으로 주님앞에 매일 겸손히 나아오고 있는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계명안에 거하여 그분을 사랑함을 나타내고 있는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내삶가운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맺지 못하고
주님을 닮지 못한다면 그 믿음을 누가 인정해주겠는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실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귀신도 하나님이 한분임을 믿고 떤다고 한다
믿음의 도에 대해 배우고 행하고 확실한 데 거하자
구원은 한순간에 온전히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내로써 주님오실때까지, 나의 생명이 다할때까지 인내로써 경주하며 이루어가고 또한 지켜내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적 마귀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말라
한가지만 더하고 1부원고를 끝내고자 한다
설명할 관점은 다른관점같지만 조명이 다를뿐이다
의인이 되려면 두가지의 측면을 만족시켜야 한다
1.우리가 예수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라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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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의인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약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 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신 6:25)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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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가지를 하나로 해석해야 한다
위의 말씀은 은혜의 두가지 측면을 써놓은것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은혜의 두가지 측면은 한가지는 우리가 보혈로 인해 죄사함을 받는 구원의 선물을 받는것이요 은혜의 다른측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수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말해 구원의 선물과 구원을 유지하는 능력(생명의 성령의 법)을 말한다.
다시말해 보혈로 의인이 되었으면 의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합당한 삶을 살고 의인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가?
바로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말안에 거하는 삶, 붙어있는 삶을 통해 즉 예수의 생명에 연합된 삶을 통해 의인으로 사는 능력을 받고(은혜경험), 의인의 신분을 유지할수있는 것(주님안에 거함)이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조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조건)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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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그를 주관치 못하고 죄의종노릇하지 않는 순종의 종노릇하고 지체를 순종의 무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 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 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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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인이 넘어질 수 있지만 오직 다시 말씀으로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인데 그믿음은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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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의인이지만 우리는 죄로 오염된 세상과 환경에 노출되어있고
우리의 육체와 정신 즉 혼적인 영역인 마귀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타락과 배교가 생길수 있고 자유의지를 통해 주님의 뜻을 거스리고 불순종할수있는것이다. 이것이 반복적이고 고의적이며 습관적인 죄를 통해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심이 화인맞으면 회개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고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는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으로써 늘 이기는 삶을 살고, 정체성을 알고 패배하고 좌절하는 삶이 아니라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동시에 우리의 심령은 죄인의 심령이 되어 늘 통회하고 상한 심령이 되어 죄를 죽을때까지 미워하고 혐오하며 죄를 벗어버리고, 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며, 빚진자의 심령이 되어 주님의 용서하심같이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수있어야 할것이다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 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 로소이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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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의 능력이 있는 곳에 말씀의 능력이 있고 성령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라,
그렇다면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해 기만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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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또한 참고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부록 -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이단)
조승규 / 킹제임스성경신학대학 교수
▲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단으로 몰렸음을 알 수 있다. ▲
성경에 기록된 이단 규정에 관한 첫 번째 사례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단 규정이 전혀 비성경적으로 행해져 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이단 규정의 사례였고, 교회사를 통해서도 이런 일들이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단”(heresy)이라는 단어가 명사로 4회(행 24:14, 고전 11:19, 갈 5:20, 벧후 2:1), 형용사로 1회(딛 3:10) 나온다. 이 가운데 누군가를 이단으로 부른 첫 번째 경우가 사도행전 24:14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즉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서 내가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으며』 그런데 이 구절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대상은 다름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가장 잘 따랐던 사도 바울이었다. 당시 종교적 위선자들이었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증거한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고 불렀던 것이다(행 24:5 참고).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소하는 이유에 대해 증거도 댈 수 없었던 반면(행 24:13), 바울의 믿음과 실행은 그의 고백처럼 전적으로 성경적이었다(행 24:14-16).
그런데 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바울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처럼 바울도 이단이라며 고소했겠는가? 그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와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유대 종교지도자들보묀ᖺ예수 그리스도를 권위 있게 믿고 따르게 되자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박해받았던 이유도 그들이 주님께서 보이셨던 표적들을 그대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행 4,5장). 또한 그들 가운데 있던 바울도 회심하여 주님을 증거함으로써 율법으로 의로워지고자 하는 유대교의 교리와 실행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를 선포하고 실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무지한 대중들이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 자신들의 교권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을 위해 종교적인 위선자들은 눈에 보이는 진리와 명백한 증거들에 대해 소경이 되어야 했고, 없는 증거들을 조작해야 했으며, 왜곡된 것들을 말해야만 했다.
소위 정통의 자리에 있었던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테판을 죽이기 위해서 은밀히 사람들을 매수하여 거짓 증언을 하게 했고(행 6:11),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선동하여 성소를 더럽혔다고 거짓 증거를 했다(행 21:28). 이 두 경우 대제사장을 비롯한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로 이루어진 공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행 6:12; 23:1). 이것은 마치 로마카톨릭의 공회와 개신교의 교단 총회가 그 역할을 한 것과 일치한다. 신약성경을 살펴보면(마 26:59, 막 13:9) 공회나 종교회의라는 것은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는 일을 하며(행 5:40) “한 마음”으로 뭉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진짜 이단들의 모임이었다(행 23:6). 그들에게는 진리란 단지 명분이며 그들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의 명성과 교권을 추구하는 한국 교단들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자신들이 바로 이단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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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온유 전도사의 심판과 구원에 두번째 글
성령의 감동으로 쓴 이 프린트물을 보고
주님의 심판을 잘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는 시간되길 바랍니다.
당신은 반드시 심판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 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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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빛을 비춰진 만큼, 직분을 맡은 만큼, 우리는 행할 의무가 있다. 그만큼 또한 심판이 차이(물론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하신다)가 나기 때문인데,
(요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 신 것이니라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 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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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믿는자들)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 에 책망하시되
(마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방인)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 이요
(눅 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 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히 5:12)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 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 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벧후 2: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벧후 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벧후 2: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 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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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가롯유다가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나았을텐데라고 말씀하셨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 리로다 그 사람(유다)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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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유다는 병과 약한것을 고치는 권능을 받았음에도 양심에 화인맞아 자살을 하게되고 지옥을 가게된다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 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 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마 10:4)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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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구절은 사역에 관련된 상급을 의미한다.
(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전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 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전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전 3:15)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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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과 달리 구원에 관련된 심판은 다음구절이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 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 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 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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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믿음의 행위(말과 행동)뿐 아니라
동기와 숨은 뜻과 양심과 생각을 심판하신다
(전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심판)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롬 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 이요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롬 14: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롬 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 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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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후 백보좌 심판때 모든인류가 그앞에 심판을 받는다.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 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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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장 31절부터 잘 읽어보아라. 백보좌심판을 잘 요약해 놓았다
(마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 에 앉으리니
(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마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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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장을 잘 읽어보시고 교회 안에서 나는 진정한 양인가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눅 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 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 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고전 10: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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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 끝에는 주님이 영광으로 서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망으로 이 길을 걸어가셔야 합니다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자아(자존심,의,혈기등 우리를 내려놓으며)를 죽이며(천국가는 조건인 눅14:25절부터 읽어보세요), 내안에 주님만이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며 그분이 내안에서 의를 이룰 수 있도록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영광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기를 내가 생각하는 큰죄(살인죄나 간음죄 등)와 작은죄(시기,질투,용서하지못함 등)를 나누어 생각해서 죄를 미워하지 못하고 단순히 나눌려고 하며, 그죄에 기만해서 나는 구원에 안정감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교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죄에대해 살펴보지 못하고 말씀의 빛으로 죄에 대해 조명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왜냐면 성령을 죄를 깨닫게 하시고(요16장) 주님은 우리가 날마다 자백하며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 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 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 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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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구절을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 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 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 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 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 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 로받지 못할 것이요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 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 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롬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 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덕을 세우라는 말씀이다.)
(고전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마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 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 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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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밖에 용서하지 못한 죄, 고전13장에 사랑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다소용이 없는것(갈5:6),우리 마음속에 교만한죄도 용서받지 못한다.
결론
주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말씀의 빛이 나의 마음속을 비추면 비춘만큼
나의 무지와 무능력과 연약함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이 너무중요하다
이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가난한 심령이 될수있기 때문이다
내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이 영으로 깨달아지고,
더욱 그분의 용서하심을 깨닫고 빚진자의 심령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는것은 자신을 죄인으로써, 죄의식으로 살아갈수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고 말씀으로 나를 채우고 주님이 주신 새생명을 얻은자로 주님과 연합하며 매일 그분께 순종하며 사랑하며 친밀한 영으로 교제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완전한 겸손이다.
우리인간은 혼(생각,감정)과 몸이 세상에 있지만 영은 주님께 속한 영적존재이고 하늘의 시민권자이다.
주님은 이런말씀을 하셨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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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처럼 온전해질수없지만,
주님은 우리가 푯대를 향하여 주님을 닮아가라말씀하셨다.
주님을 닮은만큼 천국에서 큰자가 될것이다.
늘 전진해나가고자하는 중심과 동기와 이유를 보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보이실것이다
사람으로 할수없으되 하나님은 능히 할 수있으시고 이것이 기독교의 비밀이며
이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 속해있다. 육적인 눈으로 보면 못할 것 같지만 어린아이가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띄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뛸 수 있게되는 것처럼 그분께 초점을 맞추고 순종으로 한걸음씩 내디뎌볼때 그분의 참맛을 볼수있을것이다
(마 19: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 으리이까
(마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 으로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 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 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 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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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두 사람을 묵상해보라.....................................................................
우편강도 vs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권능 행하고,선지자 노릇한자들(마7:22)
아니 초신자도 천국갔는데
예수 오래믿어 능력도행하고, 기름부음도 받으며. 교회안에서 남들 다 알아주는 직분자인 내가 지옥을 간다니...
무슨 말이예요?
그 해답을 성경적으로 보여드립니다
✔우편강도
(마 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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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왼편, 우편 두강도 모두 예수님을 욕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누가가 기록한 내용은 내용자체가 완전 변화(회개: (헬)메타노이아)되어 기록되어져 있다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 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 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눅 23: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 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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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건은 시간의 흐름을 두고 한 행악자가 주님을 영접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와 같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욕했지만 시간이 흘러(성경안에 자세한 정황은 나와있지 않지만) 그의마음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천국을 가는데 필수적인 회개와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고백을 누가복음에 잘 보여주고 있다,
(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대한 회개와 우리주예수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증언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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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 나타난 이 짧은 고백안에(하루동안) 그의 진실한 마음과 그의 신앙고백을 면밀히 분석해보라.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죽기전 영접 기도가 아니다. 단순히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다.이 고백안에 열매는 매우 작지만(신앙생활을 못함) 죄의 인식이 있고, 회개가 들어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있으며, 믿음이 있고, 부활의 신앙이 들어있다.
말 그대로 초신자가 주님을 진실로 회개와 믿음가운데 영접하여 바로 죽음을 맞이한것이다 이 사람은 예수님 말대로 낙원(우리는 낙원과 천국의차이점도 알아야 할것이다)으로 갔다.
조금 자세히 보길 원한다.(내용분석)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 를 구원하라 하되(처음에는 둘다 비방했지만 한사람은 변화되었다)
(눅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 려워하지 아니하느냐(죄에 대한 인식으로 인한 하나님을 두려워함: 죄와 하 나님의 관계를 이 행악자는 이해했다- 진실된 회개가 이어진다)
(눅 23: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예수님의 하신일을 믿음으 로 인정하며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했다)
(눅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하나님나라 즉 천국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셔서(부활신앙) 그의 나라에 들어가실것을 진실로 믿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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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중심을 보시고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신다. 그러기에 인생이 속일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다 분명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던 이 변화된 행악자는 신앙생활을 했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풍성히 맺을 줄 주님은 아셨을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를 또한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다. 이 행악자는 열매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살 기회가 없어서 많이 풍성히 맺지 못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 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열매의 유무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신다- 구원론프린트참조)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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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구절에서 이 초신자 말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던 자들을 한번보자 놀래지 마라. 이사람은 권능을 행했다. 와우 선지자 노릇도 하고 와우 귀신도 쫓아냈다. 당연히 초신자인 변화된 행악자처럼 천국에 들어갔을까? 아니다 지옥에 갔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에 오류가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이 말은 완전 오류이자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사탄의 감언이설이다
(마 7:22) 그 날에(심판) 많은 사람(다수)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 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눅 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 는 자가 많으리라(구원받는자의 비율이 적다)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예수님의 부인)
(눅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 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믿는자였다)
(눅 13:27)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눅 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눅 13: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눅 13: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 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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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구절을 보라.
성경의 내용 중에서 제일 충격적인 부분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교리를 깨뜨리는 장면이다
보다 단순하고 정직하게 성경을 보라
이래도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교회만 나오는 신자가 다 그리스도인인가?
한쪽 발은 세상에 한쪽 발은 교회에,,,
마치 교회를 이중보험들 듯이 들어서 구원의 안정감속에 기만하며 살아갈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상고해보자
여러분은 지금쯤 많이 헷갈려야 할 것이다
우편강도는 초신자때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위의 구절에서와 같이 오래 예수를 믿었던 아니 권위도 있고 능력도 있고 기름부음도 행했는데 지옥으로 떨어지다니...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이해해야 한다 무엇이 그분의 공의인가? 무엇이 그분의 정의인가?
당신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롬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인자: 어린 양)과 준엄하심(엄위: 유다 의사자)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 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 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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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그것을 알고 이렇게 고백을 한다
(계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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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내용 분석에 들어가보겠다
이 구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래구절의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말이 참말인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마 7:22) 그 날에(심판) 많은 사람(다수)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 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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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위 말에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낸자는 분명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다음구절을 보자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 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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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 거하는 모든 믿는자에게는 이런권세를 주님은 위임하셨다.
그러나 불신자가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낼때 어떤현상이 일어나는지 보자
(행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 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행 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행 19: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행 19: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 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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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위의 구절은 확실히 믿는자가 지옥을 간것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며”
권능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능력이다
참고로 출애굽 재앙때 마술사들이 피재앙과 개구리재앙을 따라했지만(거짓술법) 티끌을 이로 바꾸는 창조적인 권능앞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
(출 8: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출 8: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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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 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 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예수님이 직접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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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위구절은 믿는자이다 이해가 되시나요?
그런데 주님의 그들에 대한 말씀을 보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포도나무 비유에서 주님은 우리와의 생명의 결합 그리고 연합된 상태를 항상 강조하셨다.
쌍방향으로 교제가 일어나길 원하신다
주님은 주님에 관해서 아는것(단순한 역사나 지식)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 알기 원하신다.(관계와 연합)
예를 들어 내가 이명박대통령을 아는것은 일방적인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은 나를 모르는것이다 이럴때 내가 이명박대통령을 관계적으로 아는것이 아니다
대통령도 나를 알고 나도 대통령을 아는 관계가 주님이 인정하시는 관계이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 을 열면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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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또한 주님께 인정을 받아야 그것이 합당한 믿음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도들이 자신의 믿음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이고 그 믿음을 말씀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험해보고 점검해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말씀으로 주님과의 언약관계를 살펴보지도 않는다.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말씀으로 살펴보라)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 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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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고백이 우리에게 들려온다
(시 26: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 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시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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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눈으로 판단해 달라고 했던 다윗의 기도가 지금 여러분의 기도가 되고 있는가? 아무튼 주님이 우리를 아시는 바되길 주님은 원하시는데 다음 성경구절이 명쾌한 해답을 줄것이다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 아 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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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을 해석하자면 20이상이 걸릴것이다 성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시적으로 나와있는 다음구절을 단순하게 해석해보자 말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자이다.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 요
(요일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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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절(고전과 요일)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그분과 내가 연결되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행함을 통해 그분안에 거해지고 그분의 사랑안에서 생명의 연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더자세히 이것을 풀자면 내용이 길어지므로 여기서 생략하겠다
(요한복음15장과 요한일서를 잘묵상하면 더많은 연결성을 찾을수가 있을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주님말씀하신데로 주님이 부인한자들이다
사랑이라는 속성이 빠져있는것이다
다음구절을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것이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 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 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 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 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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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가페,영의 사랑을 말함= 예수님의 사랑)으로 행치 않는 모든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을 더했을 때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이다
사랑은 열매이다. 분별은 단순히 은사나 기름부음이 아니라 열매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다.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 법의 완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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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말한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예수님)가 너희 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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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우리의 사역이 인격이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두 번째 이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불법이 무엇인가? 누가복음에는 악행하는 자들이라고 나온다.
맞다 불법은 죄이다.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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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 안에 있지 않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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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뜻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죄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성경에는 명시되어 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돈과 여자 명예에 노출되어있다(벧후2장)
특히 탐심은 극에 달한다,
바리새인이 성경에 보면 돈을 사랑했다고 나오듯 오늘날 바리새인의 영들이 교회안에 가득하다.
탐심도 불법이요, 음란도 불법이요, 자기영광도 불법이다.
교회안에 불법이 들어서면서 하나님의 법이 무너지고 있다.
이것은 말그대로 누가복음에서와 같이 행악 즉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한다
발람(민수기22장~24장까지 묵상해보길 권한다)은 처음에 하나님의 선지자였으나 사역도중 탐심이 싹이 트고 자라나서 결국 미혹당해서 그길을 벗어나멸망당했다는 사실(유다서와 벧후2장에 증거) 그러나 그의 사역중 4번의 예언은 실로 정확했고 실로 하나님의 영이 그위에 임했다고 기록되어진다.
단순히 기름부음을 받고 능력을 행한다고 해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참종이 아니다 반드시 영과 열매로 분별해봐야 할 것이고,사역자는 변질되지 않도록 말씀으로 뿌리를 깊숙이 내려서 기름부음을 유지하고 관계가운데 늘 벗어나서는 안될것이다 또한 그 사람에게서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겸손함과 온유한 주님의 성품이 사역자의 성품에 들어가야 할 것이고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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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분노가 있더라고 그 기초는 예수님처럼 사랑에 기초한 거룩한 분노가 되야 할것이다
바울은 이런고백을 한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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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어떻게 전파했는가?
(행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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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로 알수있듯 엄청난 권능의 소유자였음에도 그는 늘 주님과 자신의 관계를 살피면서 겸손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늘 주님의 사역과 인격을 닮아가길 원했으며 자신을 깨끗이 하고 거룩해지길 원했다,
(딤후 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 비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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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역과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사역중심 일중심이 아나리 우리는 관계중심이 되어야한다 영생은 관계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 는 것이니이다
관계가운데 깊숙이 들어서는 것은 죄의 문제가 늘 해결되며(회개와 거듭남)거룩함과 께끗함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 거룩함을 유지해 가기위해서는 또한 순종이 필요하다. 할렐루야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은사나 사역)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 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사역)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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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온유 전도사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세번째 글
발람(민22장)VS 하나님의 사람(왕상13장)
설교 - 영분별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 인생을 결정짓는다
솔로몬 후 북이스라엘의 왕이된 여로보암 왕을 연구해보면
(왕상 11: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왕상 11: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 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 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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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은 약속을 받았으므로 더 큰 저주를 받게 된다
여러보암의 불순종(왕상12장내용)과 우상숭배로 인해서 그는 가문의 씨가 말라버리게 된다
(왕상 13: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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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심판하기로 결정하셔도 예언하셔도 회개하면 그분의 뜻을 돌이킬 수 있다.
(왕상 13: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 게 예물을 주리라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음)
(왕상 13: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왕상 13: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 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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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님의 사람은 발람과는 달리 탐심이 없었고, 분명히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자는 분명히 기름부음받은 자이고 여로보암의 손이 마비되었을때 주님께 은혜를 구해서 다시 성하게 하는 기적도 발휘했던 참 선지자 였다.
그런데
(왕상 13: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 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 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 람을 속임이라
(왕상 13: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 을 마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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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선지자를 미혹했던 사건이 나온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그 하나님의 사람을 초청하고자 했다. 그래서 거짓계시를 준다.
여러분을 미혹하는 것은 믿는자가 될것이다.
이 하나님의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거짓계시에 바로 넘어가게 되었다.
1. 왜 나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2. 변덕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라는 소리다
3. 확증을 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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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태세를 갖추는 시대이다.
요새는 잡계시가 너무나 많다.
불순종의 심판을 전했던 선지자가 불순종으로 심판을 받게된다. - 사자에게 찢겨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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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발람과 하나님의 사람처럼)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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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발람(탐심)과 하나님의 사람(탐심은 없었다)을 비교해 보자
발람(민22~24장)
유명한 부흥사 발람
(민 22: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 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 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하나님 의 명령이 떨어짐
(민 22: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 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명령은 떨어졌지만 탐심의 마음이 싹이틈(세번째 방문때 많은 은금을 가져옴)
(민 22: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 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 라 하시더이다
(민 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민 22: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이미 주님은 가지말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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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22: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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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가로막았지만 이글전체와 문맥상 그의 마음에 가고자 하는 마음과 물질에 대한 탐심의 싹이 트고 있음을 확인할 수있다
(민 22: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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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탐심이 속에 숨어있어도 기름부음은 역시 임하고 4번의 예언 역시 정확했다
(민 23: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 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민 24: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그 때에 하 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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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대 영분별의 중요한 기초와 시금석을 알아야 한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살후 2: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 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벧후 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 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 하느니라
(벧후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벧후 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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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분별은 사람자체의 영을 분별하는 것인데
그 속을 뚫고 들어가 동기를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를수 있지만 발람의 예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개 드러난다.
탐심인가? 사랑인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가?”
▶“호색을 쫓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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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그들의 (사랑)열매 즉 성품과 인격에서 주님이 보이는가?
더 나아가 사역까지 들어가면 그의 말과 선포가 그것이 진리에 기초하는가?(하나님의 사람의 실수)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하는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는것이다.
▶단순히 사역이 아니라 존재가 되는것이다
▶많은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것이다
천국은 은사가 아니라 열매로 간다는 사실이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은사, 사역) 자신이 도리어 버 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열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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