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스크랩]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


  


자기발견과 성결 -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

우리는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본심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을 의식하여 본의아니게 거짓된 언행을 해보기도 하고, 자신을 속여보기도 했을 경험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교회에서 오랬동안 충성 봉사하며 신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를 떠납니다. 연락도 끊기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도통 알지 못할 정도로 잠적해 버리는 것이지요. 이것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었거나 잊을만하면 주위에서 보여지는 광경이기도 할 것입니다.

잠잠히 열심내어 충성 봉사하는 듯 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버럭 혈기를 내고 소리를 치기도 합니다. 순하고 순한 목사님인줄 알았는데, 사모님인줄 알았는데 성도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나 언성을 높이며 심히도 혈기를 내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열심내어 다니는 성도님이 어느날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게임에 빠져 기도시간을 빼먹고 오히려 교회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도 하구여.

여기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은 이젠 그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교회의 눈치로 인하여 본연의 내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놓은채,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는 분에 넘치는 몫을 감당하다가 실족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목사님이 시키니까, 성도들이 보고 있으니까, 안하면 분위기 깨질 것 같아서, 아버지가 장로인데 행여나 누가 될까봐,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긋나면 안되기에, 남들 다 하는데 나 혼자만 안하면 왠지 믿음 없는 사람 같고, 소외감도 느껴지기에...

자 이제, 우리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왜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을 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믿음인양 착각하면서 충만함도 은혜도 받지 못한채 꾸역꾸역 어떤 신앙의 행함을 계속 유지하려 하는지 자신의 내면을 잘 점검해보고 버릴 것은 버리고 성령으로 채워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을 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점검해보아야 할 4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어떤 선교회 임원은 상대를 마음에서 미워하면서도 그 미운 마음은 철저히 감춘채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모임에도 잘 참석해주지 않으면서, 힘들때 잘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툭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내밀며 선교회나 임원들에게 불만과 지적의 소리를 하니 겉으로는 받아주면서도 속으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요.

또한, 자기의 위치는 그만큼 남에게 보여지는 위치요, 신앙의 연륜도 있는지라 자신의 불편한 속내가 드러나는 것은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요, 그러한 악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선교회 임원들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서의 일입니다. 물론 목회자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속내도 그러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영혼에게조차 먼저 인사를 한다는 것에 무척이나 사랑이 많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는 아주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그러나 이내 목사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본연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목사님 앞에서는 혈기를 안내면서도 목사님 안계시면 이런저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주위와 화평을 깨는 것입니다.

상대가 넘어지고 안되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저 사람은 죄 때문에, 악해서, 저 꼴 날 줄 알았어" 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샘통이다"라고 내심 마음이 즐거워지는것이지요. 그러나 그 앞에서는 안됐다고 하면서 위로하는 척 하기도 합니다.

남자들과 함께 있는 곳에서는 곧잘 짜증을 잘 내고 이래저래 언행이 거칠게 나오면서도 여자가 있으면 음식이 아무리 늦게 나와도 그 잘 내던 짜증 한번 안내는 것입니다.

오히려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에 "더 맛있게 나오려는 거겠지?" 아주 긍정적인 멘트까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자와 있을때와 여자와 있을 때의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다른 이의 행동이 다 가식적이고 자신과 남을 속이는 행위라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속으로는 아무리 화가 나고 미움이 있어도 상대에게 무례히 말하거나 함부로 자기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상처를 주는 것은 심히도 삼가 경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직도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교회의 일을 감당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직도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꾹꾹 눌러놓은 채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신의 내면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주님께 토로하셔야 합니다. 많은 일꾼들이 겉과 속이 다르게 충성 봉사하면서 불평과 원망을 쌓아두고 살아갑니다. 앙금과 미움을 쌓아두고 일합니다.

그러다 어느덧 못참으면 자신은 할 도리는 다했고 참을만큼 다 참았다 하여 분을 내거나 교회를 휙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은 살펴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육의 충성으로 자신의 신앙이 좋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됩니다.

둘째,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즉흥적으로 기분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은 재밌고 분위기도 좋았을지는 몰라도 정작 다음날 되면 자신은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시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 하였는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즉흥적인 말, 기분적인 말, 헛된 농담하는 말은 우리가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버리려고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의 모임안에서 그다지 할말이 없으면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가십거리를 만들고자 일부러 사실을 과장하여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할말이 없을 때는 조용히 있는 것도 배워나가는 훈련이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말한 것을 얼마나 지키는지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제 자신도 어느 때는 기분적인 말을 했다가 지키지 못하여 당황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해 가셔야 할 것입니다.

셋째,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행함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의 진짜 모습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는 혼자 있을 때입니다. 교회안에서는 성경보고 예배드리고 기도한다 하면서도 교회 밖에 나가면 교회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있지요.

자신보다 더 배우고 가진 자들 앞에서는 겸손하면서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는 쉽게 지적이 나오고 정의로운 메세지로 포장되어 업신여기는 언행이 나오기도 하구여.

남이 연단 받을때 자신이 해주는 말과 정작 자신이 연단받을 때의 모습은 어떠한지도 점검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낮에나 혹은 일터 끝나고 방안에 혼자 있을 때 정작 자신은 무엇을 보고 들으며 가까이 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갈때는 애써 신호등을 잘 지키면서도 혼자서 운전하고 갈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으면 휙! 하니 신호를 위반하고 떠나는 모습도 발견해 보셔야 합니다.

실화인데, 어느 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그 날은 기도하기 싫고 이젠 그만 집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고 싶은데 아무래도 성도들보다는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체면이 있는지라, 성도들이 어여 나가기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성도들의 기도소리도 희미해지더니 잠잠해졌습니다. 목사님은 이젠 되었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순간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나자, 얼릉 자리에 앉아 "주여" 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 착한 콤플렉스를 버리셔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소위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모든 이들을 만족시켜 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이들로부터 만족을 받으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괴롭게 할 뿐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대인관계를 실험한 결과, 10명이 있으면 그중에 2~3명은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상대와 대화 한마디도 안해보고서 그냥 느낌상, 그냥 이유없이 마음이 그러하게 그 상대가 싫고, 그 상대가 아무리 잘 해주어도 여전히 싫은 마음은 싫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건전하게 무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상대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일이지만,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 모든 이로부터 만족을 받으려 하는 강박관념은 빨리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주위에게 너무 잘 보이려고 한 나머지, 자신에게 오는 비난과 비판의 소리에 너무 연연하여 괴로운 반응을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착한 콤플렉스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좀 어거지 말이 될 수도 있으나, 주님안에서 건전히 무시하는 마음을 터득하시라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 말을 오해하여 자기 편에서 몇번 친절히 대해보고 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나랑은 안맞어 이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진리로 분별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은 하나님앞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자신이 남에게 보여지는 신앙을 하는 데에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4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했습니다.

첫째,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은 있지 않나.
둘째,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셋째, 때와, 장소, 대상에 따라 나의 언행이 어떠한가.
네째, 착한 콤플렉스 즉,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 하고
        모든 이로부터 만족을 받으려는 강박관념이 있지는 않는가.

이 외에도 남에게 보이는 신앙을 하는데에는 여러 이유들과 환경들이 있겠으나,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는 측면으로서는 위 4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나날이 성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여전히 한가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곧 성결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결은 곧 성령충만입니다. 이 차이를 우리가 잘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할례하지않고 여전히 육의 충성에만 머물러 있으면 신앙성장에 발목이 잡힙니다. 나를 발견하고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뼈아픈 일입니다. 차라리 새벽기도 40일 작정을 하고 말지 할 정도로 자아가 죽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일이요 성결이 될수록 성령님이 더 많이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고 주님의 일을 이루어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기도 많이 한 자가 큰 자도 아니요, 전도 많이 한 자도 큰 자가 아니요, 봉사 많이 한 자도 큰 자가 아니요, 바로 죄없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니 육의 충성과 더불어 영의 충성, 즉 마음의 할례에도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늦추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천국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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