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7일 토요일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다툼이 생겨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사람은 너무나도 억울하여 길을 가다가 모래에 이 사실을 기록했다.


조금 더 길을 가다가 늪에 빠진 뺨을 맞은 사람이 도움을 구하자
다른 뺨을 때린 사람이 그 사람을 구해 주었다.


너무도 감사하여 돌에 그 사실을 기록했다.


마음이 하나여서 원망하는 마음과 불평하는 마음을 다 새겨놓을수 없다.
자유의지...자유의지... 하는 무식은 버리고, 
우리의 자유 의지 마저도 주님께 맞겨 드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길수 있을듯 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돌에..주님의 반석위에 새긴 진정한 크리스쳔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야 겠다.
두 명의 모라비안 젊은이들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모라비안들은, 17세기에 개신교에서 최초로 세계선교를 시작했던 분들입니다.

이 두 명의 모라비안 젊은이들은, 이런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느 무신론자 영국인 소유주가, 자기 소유인 대서양의 한 섬에,
2~3천명의 아프리카 노예를 데리고서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유주는, 어떤 전도자도, 그 섬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팔려오거나 잡혀온 그 노예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어보지 못하고 평생 살다가.. 죽어야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모라비안 젊은이들은 기도하고, 결심했습니다.
그 노예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자신을, 그 영국인 농장주에게 팔아서, 노예로 그 섬에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배가 함부르크 항구의 부두를 떠나서, 북해로 멀어져 갈 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20대 초반의 두 명의 젊은이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기 위해, 그들의 가족들과
헤른훗(모라비안 본거지)에서 동료 모라비안들이, 배웅을 나왔습니다.

그들은, 몇 년 계약이 아니라, 종신 노예로 자신들을 팔았습니다.

가족들은,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 줄로 알았기에, 항구에 나와서 울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들이 왜 떠나야 하는지 물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의아해 했습니다.

배가, 부두와 간격이 멀어지며, 바다로 미끄러져 나갈 때였습니다.
배에 탔던 한 젊은이가, 친구의 손과 함께 자기 손을 들어 올리며,
마지막으로 배웅 나온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난 받으신 어린양이, 그분의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으시길!”

이것이 그 후로부터, 모라비안 선교회의 구호가 되었습니다.
‘죽임 당한 어린양이, 그 분의 고난에 대한 보상을 받으시길!’

그들은, 자아가 십자가에서 확실히 죽은 사람들이었고,
그것이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처럼, ‘자기의 영광 추구’가 아니었습니다.)   *이단락, (6)회에서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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